윤리와 무한 읽기(1), 레비나스 강독, 12월 15일
네모 : 사유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레비나스 : 사유는 분리, 폭력 장면, 단조로운 시간 가운데 갑자기 생긴 의식처럼, 어떻게 언어 형태로 표현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트라우마나 암중모색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중략) 우리는 그런 문학으로부터 단지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서 부재하지만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닌 부재하는 참된 삶을 살게 됩니다. (중략) 실제로 읽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영혼의 선한 의도나 존재해야 함이라는 규범적 관념성에 이르지 않으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염려하는 현실주의 또는 정치학 그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지켜줍니다.
1.
사유는 주체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레비나스가 사유를 '폭력적이고 갑자기 생긴 것이며,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트라우마나 암중모색과 관련된다'는 것은 그것이 타자성에 속한다는 의미이다. 사유는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폭력적으로 들이닥치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재앙의 도래와 같은 것으로 완고한 주체를 사정없이 교란한다. 낯선 타자는 주체를 습격하며, 관성적이고 편협한 일상을 떠나, 다르게 살 것을 강요한다. 즉, 사유는 고착되고 영토화 된 장소에 시작된 아름다운 균열이며 엄습하는 사건인 것이다.
2.
문학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그것은 단지 언어를 풍부하게 하거나 말초적 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넘어선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부재하는'은 아름다움이 지나간 자리이다. 읽기의 행위를 통해 어느 순간 주체에게 도래한 장소 없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발적으로 들이닥친 타자성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불꽃놀이처럼 완성에 순간 사라져 버린 자국은 그을린 흔적으로 주체의 심장에 머무른다. 갑자기 닥친 사건에 정신을 차린 그는 서둘러 타고 남은 재를 헤집는다. 안타깝지만 구원의 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가버렸다. 비록 사랑도 지나고, 아름다움은 끝나버렸지만, 부재함을 견디기에 그는 참된 삶을 살 수 있다. 봄날의 기억과 다시 도래할지 모르는 순간을 위해, 그 이후를 강도 있게 살아갈 뿐이다. 오직 이러한 읽는 행위의 지속이 부재하는 아름다움과 연결될 수 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지향하는 용기며 다시 도래할 사랑을 믿는 것이다.
3.
읽는 행위는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서며,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규범적 완고함도 넘어선다. 문학의 행위는 자신을 염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어려움으로부터 '화상을 입지 않도록 우리를 감싸주는 리추얼적 장소'(한병철)를 생성한다. 헤테로토피아적 장소에 속한 그는 부재하지만 참된 삶을 살 수 있다. 그을린 흔적을 소중히 감싸고 기다리며 또 감내하는 삶은, 다시 한번 타자의 도래로서 초월을 가능하게 한다. 오직 무용한 용기를 가지고 반복하는 존재만이 참된 삶을 살 수 있다고 레비나스는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