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무한 읽기(5), 레비나스 강독, 12월 19일
네모 : 베르그송이 철학에 주로 공헌한 바는 무엇입니까?
레비나스 : 지속 이론입니다. 시계로 헤아리는 시간의 우위성을 해체한 것이지요. (중략) 선형적이고 동질적인 시간으로 환원할 수 없는 지속에 대해 단지 심리학적 우위성이 아니라 어딘가 존재론적인 우위성을 긍정하지 않았다면, 하이데거는 분명 현존재의 유한한 시간성이라는 그의 고유한 개념을 정립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과학적 시간이라는 널리 알려진 모형으로부터 철학의 시간을 해방한 것은 분명 베르그송의 공로입니다.
1.
베르그송의 지속은 레비나스의 초월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과업을 지속할 때, 존재자는 강도를 갖기 시작한다. 갑자기 도래한 바깥의 시간을 필연성으로 바꾸는 주체의 강도. 직선의 시간성을 초월할 수 있는 내재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는 계시받은 사건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그곳을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고 또 계속하는 비(非)성과주체다. 우발적인 사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아모르파티며,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하게 하는 가능성의 시간 앞에 선 유일한 존재다. 그는 존재 일반에서 분리된 존재, 절대적 타자 앞에 선 고유한 존재자다. 무용한 것을 서늘한 용기로 감당하는 그는, 모든 존재를 앞선 시간성을 살며, 이는 레비나스의 타자성과 초월, 존재론과 연결된다.
2.
베르그송이 기계적 시간성을 해체하지 않았다면 존재는 갇히고 말았을 것이다. 지속이 없다면, 존재는 단순 계산되고 예측 가능한 동일성의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화 되는 성과주체는 직선의 시간성을 살뿐이다. 중세로 가는 열차에 탑승한 채, 설국열차처럼 달릴 뿐 바깥을 알지 못한다. 그러한 직선의 시간을 사는 이는 선형적이고 유한성의 틀에 머무른다. 차이 없는 반복을 하는, 내용 없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
3.
현대는 상대주의적 개별성을 극복하는 가능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데올로기는 낡은 것으로, 거대 서사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종교는 비과학으로, 존재는 스펙과 빅데이터로, 어떠한 환원 불가능성도 남지 않고 철저히 파괴된 시대이다. 0과 1로도 환원될 수 있는 현대인은 너무 가벼워졌으나, 역설적이게도 어떤 것으로도 잘 열리지 않는다. 전통이 사라진 시대, 주체는 자신의 유한성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상대주의와 독백의 시대에 '전체성과 무한'은 폭력이라 치부될 뿐이다.
레비나스는 뒤르켐과 베르그송의 사유에서 존재를 지배 없이 묶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바깥에서 주체에게 영향 미치는 사회적 사실이라는 뒤르켐의 사유에서, 그는 타자성과 초월의 지점까지 사유한다. 동일성으로 고착되는 기계적 시간성에 묶인 존재를 해방시킨 베르그송에게서 그는 바깥의 시간을 이어간다. 어떤 것으로도 묶이기 힘든 존재를 묶는 새로운 바깥, 저 무한의 시간성으로 주체를 인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