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무한 읽기(8), 레비나스 강독, 2022년 1월 3일
네모 : 어떻게 후설의 작품에 다가서게 되었습니까?
레비나스 : 우선 자신을 파악하거나 다시 파악하는 스스로 숙고하기의 가능성, 즉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물음을 명확히 던질 가능성. 아마도 이것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현상학, 많은 소란을 일으킨 본질직관 그 너머의 현상학일 것입니다. 인식에 자연스럽게 부과된 것을 매우 불신하며 어떤 자발성이나 기존의 평범한 현전에 속지 않으면서 자신을 찾고 자신을 기술하는 코기토, 곧 자기에 대한 고집스러우면서도 철저한 반성이 세계와 대상을 만들지만, 그것의 대상성이 실제로는 대상을 주시하는 시선을 가리고 가로막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유와 지향이 향하고 있는 전체 지평으로 돌아가서, 대상성이 흐려놓고 망각시킨 사유와 지향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현상학은 이렇게 망각된 사유, 이러한 지향, 오롯한 의식을 소환하는 것이며, 세계 안에서의 사유에 함축된 -오해된- 지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이런 반성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다가 한계가 나타나더라도, 완전한 반성은 진리에 필수적입니다.
(중략) 모든 의식은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며, 그 의식이 요구하는 대상을 지시하지 않고서는 기술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앎은 아니지만 감성이나 열망 안에 있는 지향적 향함은 바로 그 역동성에 있어 정서적으로 또는 능동적으로 (어떤 것을 향할)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이론에 우위를 부여하는 서구 사유에 대해 처음으로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1.
자신의 사유의 출발과 끝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본질직관을 넘어서는 현상학과 관련된다. 시선의 출발점에서부터 사유 과정을 반성적으로 고찰하려면, 맵핑하듯 자신을 부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로서 주체의 고정점이 관성적 출발로 고착되지 않을 수 있으며, 진리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삿된 것에 속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한번 정립된 인식은 새로운 시선을 가로막는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자신의 사유 과정 전체를 복기해야 한다. 기존 관념과 너무 쉽게 결합해서 오해된 인식, 무의식으로 인한 비의식적 회피, 개념과 인식의 틀이란 스펙터클 사이에서 숨겨진 것에, 다시 빛을 비추어야 한다.
2.
'모든 의식은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며, 그 의식이 요구하는 대상을 지시하지 않고서는 기술될 수 없다는 것'은 타자성의 사유다.
자연에서 분리된 집에 정주한다는 사실에서 주체성은 출발한다. 사냥하고 날것을 먹는 남성성은 아직 세계와 분리되지 못했다. 그가 자기 수축을 통해 집에 거주할 때에야 비로소 내면성이 생성된다. 사냥한 것을 손질하고, 음식으로 바꾸어내고, 옷을 지어 입는 현상학적 여성성을 통해 그의 주체성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고 실존하게 되는 것이다.
태양을 피하는 서늘한 그늘, 냉혹한 바깥과 분리된 안쪽의 온유함, 그러한 내어줌. 직선적 남성성이 아닌 주름과 같은 곡선이 비로소 주체성을 탄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의식은 처음부터 그의 것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주체성은 현상학적 여성성에 대한 의식이자, 타자성을 지시하지 않고서는 기술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지향적 향함으로서 언설이 레비나스는 철학이라고 했고, 이는 서양의 사유에 근본적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즉, 주체성은 타자를 지향하는 존재로서만 주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