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한 인간이 섬으로 도착한다. 쪽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건너온 그는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말라 있다. 겨우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있는 그는 자신을 지킬 어떤 힘도 없다. 타인에게 자기 생명을 맡겨야 하는 남자는 어느 섬마을에 던져진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를 향해 적대감을 내보인다. 삼지창을 들고 몰려온 이들의 경계심은 지나치다. 그들은 무기가 없어도 벌거벗은 이를 충분히 으스러뜨릴 굵은 팔뚝, 사람 몸만 한 허벅지를 가졌다. 무리지은 이들은 낯선 이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있다.
여러분의 가정에 오늘 낯선 손님이 찾아옵니다. 아프리카 콩고의 군부독재를 피해 탈출한 사람은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여러분의 집에 왔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이는 간청합니다.
'본국으로 압송당하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입니다. 타인의 생사여탈권이 전적으로 당신께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를 온전히 환대할 수 있으시겠어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섬마을 사람들의 경계심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누구나 낯선 존재를 꺼려하며 두려움을 가지지요. 중요한 것은 두려움 자체에 함몰되어 생각이 마비되는 것입니다.
일시적 공포를 극복하고 나면 우리는 이성적 판단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누군가를 충분히 도울 수 있는 존재이지요. 문제는 최소한의 온기마저 차가운 두려움의 벽에 흘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류가 여태껏 지켜온 보편적 가치를 저버리고 생존에만 천착하는 것 말입니다.
이럴 때 '악은 아주 평범해'(한나 아렌트) 집니다.
사유하지 않는 존재에게 악이 스며들게 되지요.
오이코스적인 것과 폴리스적인 것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족(oikos)의 일만 중요하게 여기는 삶과 공적인 삶을 구분했습니다.
오이코스(oikos)에만 집중하면 폴리스적인 것, 즉 공적 영역에 대해 무관심하게 됩니다. 가족만 중요하고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이 반복되면, 오이코스의 안과 밖의 경계는 강화됩니다.
낯선 이와 가정의 경계가 처음에는 듬성듬성한 울타리로 시작하지만 곧 촘촘한 철조망으로 바뀌게 되지요. 급기야는 그림책의 표지처럼 거대한 성벽을 쌓아 올리고 맙니다.
자신과 가족만을 위하는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단지 타자를 쫓아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마저 닫히게 되는 것이지요. 거대한 성벽과 철조망은 외부만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공간성도 차단해버립니다.
결국 내가 낯선 이웃을 어떻게 대하는 가의 문제는 단지 라이프스타일로 치부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포스트 모던한 시대에 모든 것이 상대적이니 존중해달라'는 쿨한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타인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내 속에 이해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낯선 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내 속의 자라지 못한 아이가 웅크리고 우는 것을 발견하고도 결코 상관없는 문제라고 외면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는 앞의 연재 글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혹시 궁금하시면 '고통받는 타자의 삶(2)'편을 읽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