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말하지 않으면서, 자신에 대해 말하는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11)

by 김요섭



그는 때때로 가깝지 않으면서도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장벽들은 무너졌다. 때로, 언제나처럼 가까이에 있으나, 맺어진 관계없이, 가로막던 벽들이 무너졌다. 우리를 갈라놓고, 감옥의 언어인 신호들을 변환하는 데 봉사하던 벽들이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롭게 벽을 세워서, 그에게는 약간의 무관심, 즉 각자의 삶의 균형을 이루는 바로 이 고요한 거리를 요구해야 한다. 나는 그녀가 교수라 불리는 그를 그 자신으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그녀는 그 둘 모두를 보호하는 단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끔찍하게 변한다 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거기서 무언가를 넌지시 알려야 했었다면, 그걸 친숙한 언어가 되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매우 가볍게 중요한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으면서 자신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 놀랐다. 그녀는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앙다문 입에서 한숨처럼 고요한 폭력이 지나간 건, '나'라는 단어가 치아들 사이에서 진동했을 때였을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나'가 되었는데, 그것은 포기된 나, 열린 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나였다.


이 '나'라는 기호는 끔찍하다. ㅡ내가 말한 바로 그것ㅡ끔찍하게도 부드럽고도 연약한 것, 끔찍하게도 헐벗고 단정하지 못하다. 전적으로 가장된 낯선 떨림이며 전적으로 순수한 자아의 상태다. 하지만 자아의 순수성이란, 모든 것의 종말로 향하는 것이며 '나'를 완전한 어두움 속에서 밝혀 냄과 동시에 어두움 속에 내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이 최후의 나는 죽음을 놀라게 할 것이며, 그 죽음은 또한 이 순수성에게 마치 금지된 비밀처럼 표류와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 발자취와 모래 위에 열린 입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29~30p)




1.

무한의 입성, 단단한 성채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전체성 속에 들어온 절대적 낯섦. 더 이상 벽을 사이에 둔 '신호의 변환'은 필요하지 않다. '나'의 해체는 우발적 사건이었다가, 곧 그를 향한 '최초의 움직임'이 된다. 비로소 가장 멀리서 온 소리가, 가장 가깝게 속삭인다.


'나'의 종말, '끔찍한 그것'은 드디어 존재자의 무거움을 벗는다. 순진무구의 탄생, '고요한 폭력'을 향해 온전히 나아가는, 내맡겨져 있음(Gelassenheit). 절대적 타자 앞에 텅 빈 주체의 '연약함'은 성스러운 긍정이자, 가장 강함이다.



2.

텅 빈 얼굴은 나를 향해 '앙다문 입'을 내민다. '하나도 말하지 않으면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그녀는 기다리며 잊는다. 그의 뒷모습, '망각의 얼굴'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녀를 통해 시작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가능성은 다시 환원되기 시작했다. 나는 묻는다. 그는 느닷없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녀가 내민 유언장은 '포기된 나, 열린 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나'라고 적혀있다. 이 낯선 단어들이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 그의 유언장은 나의 묘비명이다. '죽음의 선고', 끔찍한 사건에 내맡겨진 존재. '금지된 비밀이자 모래 위에 열린 입'은 순식간에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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