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으로부터 나를 감싸는 얼굴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13)

by 김요섭



그것은 사실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나의 생각은 그에게까지 이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녀는 나의 생각을 멈추게만 한 게 아니다. 내가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녀의 요구로 그녀 안의 졸음같이, 그녀의 삶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게 바로 내가 말했던 것이다.


특히 그녀에게 끌린 부분은 오로지 그녀의 얼굴, 바로 그녀가 나에게 보내는 시선이었다. 그녀가 우리를 매개자로 이용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그녀는 나를 아무것에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설사 그런 목적이라 하더라도, 내가 그녀를 위해 이용당하는 것을 선뜻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본성과 생생한 친밀감으로 그와의 관계 속에서 그녀는 나 스스로를 벗어던질 수 있도록 도왔다. 나의 생각들이 그를 향해 있어도 그녀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라는 것에 일종의 행복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그녀 속에 존재하던 내 생각들의 유출, 그 생각들이 그녀에게 지웠을 무게, 더구나 거기에 내 생각들이 축적한 공백상태에 관해 신경 쓰지 못한 건 잘못이었다. 그래서 그 생각들은 힘과 대담성을 키워 갔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나에게 숙고도, 계산도, 그녀 혹은 나에 관한 걱정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내게 주었다. 그녀는 내 안에서만 생각했고 내 옆에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그 침묵 속에서 당황할 정도의 무게를 느꼈지만, 나는 그 생각들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33~34p)




1.

비어있는 형태에 낯선 얼굴이 어른거린다. 몽롱한 기억의 틈새로 침입하는 불명확한 고통. '그녀의 테두리'는 무한으로부터 나를 감싸는 얼굴이다. '숙고도, 계산도'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친밀감은 끔찍한 파편을 삼킨다. '당황할 정도의 무게'와 극한에 이른 대담함은 작은 죽음을 낳는다.


2.

'빛이 나는 비가시성'으로 현현하는 얼굴은 침묵의 운동이다. 건너가려는 자의 몽상, 순식간에 망각되는 온화한 얼굴. 깊숙이 파고든 자상 사이로, 검은 피가 샘솟는다. 부드러운 표면 사이로 떠오르는 고요한 폭력. 비로소 나는 죽음 없이 죽음으로 향한다.


3.

그녀는 '매개'되지 않으며 사용되지도 않는다. '그녀 안의 졸음, 삶 속의 휴식'은 직관(直觀)하는 몽상이다. 무의식의 동굴, 아니무스의 의지는 대지의 품 안에서 휴식하며 꿈꾼다. 수많은 미로로 이루어진 땅굴은 태양으로부터 시원한 도피처가 된다. 수천 개의 촉수를 가진 리좀은 초대받지 않은 이를 향해 뿌리를 뻗는다. 누에고치처럼 감싸 안긴 포근한 형태 속, 죽음 같은 쉼. '그를 향한 생각'의 '테두리'는 기이한 친밀감이자 금지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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