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고통, 심연을 향한 몰락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28)

by 김요섭



그는 나의 넓고도 강렬한 접근과 나의 조급함, 나의 내밀한 고독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그의 차가움과 결정적인 한계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전에, 나는 그의 잣대에 내가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아니, 단순하게, 알아차리지도 흔적을 남기지도 않을 정신을 통해 만들어 낸 한 인간과 그를 대립시켜서 그를 속일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슬그머니 스며들었다 멈추고, 노력을 통해 관심을 유발하고, 나의 확실성 속으로 그가 되돌아오는 걸 막으려 스스로를 고취했다.


내가 그렇게 그를 파악했을 때 나의 기대했던 바와는 달랐다. 그는 훨씬 젊었고, 청소년들이나 쓰는 의문 표현은 그의 실제 얼굴을 가리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받았던 느낌은 그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의 여러 모습의 외피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한 것들과 어우러져 있었기 때문에 찰나의 스침에도 그의 고통을 자각하게 되었던 것이고, 그의 고통은 두 번째, 세 번째 얼굴이 되어 그에게 현실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모습을 부여했는데, 나는 결코 그 거리를 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두드러지는 고통 때문에 멈춰 섰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와 내가 거리를 두려 애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 그의 현존이 지닌 극한의 수월성에 속아 넘어가지는 않았다. 분명히, 그는 내가 그에게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내 곁에 가깝게 존재했다. 나는 필연적인 투명성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일종의 주의력 결핍으로 그와 나 사이 어중간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고통이라는 것, 혹은 내가 고통이라 명명하는 것은, 그와 떨어져 나오는 대신 그의 내면으로 침투하기 위해, 그래서 어쩌면 거대한 빈 공간을 그것으로 채우기 위해 그의 얼굴 표면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겪고 있는 두려움의 풍경은 얼마 안가 이 모든 것을 멈춘다.


그녀는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우리는 그에게 고통을 줄 수 있지만 그에게 해를 끼치지는 못한다고, 그리고 악의 없는 상처는 나에게 더 가볍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하지만 상처 바깥에 존재하는 상처야말로 가장 나쁜 것이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단순한 모습을 부여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나는 그 단순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현존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 속에 있었다. 그것은 현재였다. 그러면서도 지나간 과거였고, 하찮은 현재가 아니라 이미 지나갔지만 영원했던 현재였다.

(54~56p)




1.

'여러 모습의 외피'는 파악되면서 파악되지 않는다. 다가갈수록 멀어지며, 얼굴의 복수성 뒤로 자신을 숨긴다. 그의 '극한의 수월성은' 깨지기 쉬운 고통이기에. '결코 그 거리를 넘지 않음'은 아름다움의 덮개를 열지 않는 것이다. 필연적이나 투명할 수 없는, 가까움. '어중간한 공간'은 명증적 인식의 결핍이며, 희미한 망각으로 우리를 이을 뿐이다. '일정한 거리'의 파토스를 향한 나의 결핍.


2.

'상처 바깥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고, 치유되지도 않는다. 다시 한 꺼풀 벗겨지는 껍질은 힘없이 스러진다. 껍데기는 전존재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하찮은 현재'를 견딜 수 없게 하는 '지나간 기억'. '영원했던 현재'는 바깥의 고통이다. '가장 나쁜' 기억, 어디에도 없는 진리 사건.


3.

끝없는 추락은 부재하는 이를 향한 도약. 계속해서 밀려나고, 사라지는 가벼움. 심연을 향한 몰락은 아직 깊음에 도달하지 못했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그의 얼굴 표면'. 넘을 수 없는 수렁은 끔찍한 죽음을 수없이 겪게 한다. 아름다움은 단지 '찰나의 스침'일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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