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더 생기를 띠는, 기이한 망각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30)

by 김요섭



그렇다. 가깝게 느꼈지만 언제나 깨달은 건, 나에 대한 기억은 정작 나 자신에게서 스스로를 끊어 내기 위한 근원적인 사라짐이었다는 사실이다. 고통은 나의 인격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강한 감정이 누가 그를 곤경에 처하게 할 수 있는지 묻지 않는 걸 방해했다. 그것이야말로 우정이었던가? 아니, 오히려 나는 어떤 문제가 그에게 생길라치면 그를 구하러 가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게 고통이 아니었을까? 그를 덮으려는 욕망, 우리 스스로의 이미지에 그를 잡으면서 출구를 돌려주지 않으려는 욕망,


이 공간, 즉 우리 고유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던 장막하에서 그를 마주한 채 우리는 서로 닮아 갔다. 나는 그녀가 우리보다 더 진지하게 침투해 올 것이라 확신했었다. 그녀는 우리 중 어떤 이보다도 젊은 시절부터, 더 오래전에 대도시를 떠나 왔다. 그녀는 한 소녀에게 쏠리던, 매우 먼, 떠들썩한 세계밖엔 떠올리지 못했다. 그 소녀는 축제의 가장 큰 힘이었으며, 영화관의 어둠은 스크린의 이미지들보다도 생기를 띠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 무리의 아름다움, 엄청나게 곧게 뻗어 나가던 힘, 길이 지닌 권위의 본질을 구성하는 돌의 표면들, 그 위로 포착할 수 없고, 비인간적이며 마치 망령들의 그것 같은 한 생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이미지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그녀의 기억 안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게다가 유동적이고, 우리의 것보다 더 가까운 원천을 지닌 이 이미지들은 그녀를 더 먼 곳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거기는, 우리가 좀 더 빨리 결합되었던 전혀 다른 과거 속 같았다.


하나가 가면, 옆에 있던 다른 하나가, 그곳으로 슬며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왜 그렇게 서두르는 것일까? 만약 내가 그 이유를 물어봤다면 그녀에게 이 공간이야말로 추억들이 숨겨지지 않는 공간이란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이 공간은 어떤 꾸며 낸 이야기도, 변장도 없이, 심지어는 그녀조차도 모르는 새 그녀의 진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아니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상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상상적인 몽상에 등 돌렸다. 일종의 분노와 같은 감정과 함께 불행하게도 경이로움을 꾸며 대며 속임수를 쓰려고 애쓰는 인간들의 비루함을 혐오하면서.

(58~60p)




1.

축제는 끝났으나 영화관의 '어둠'이 더 '생기를 띠는', 기이한 망각. 그를 붙잡으려는 욕망은 더 낫게 실패하는 열정이다. 멀어져 가는 이를 포획할 수 없음에도 한없이 기다리는, 괴이한 꼼짝 않음. '더 진지하게 침투해오는' 사건을 고대하는, 모진 침묵이다. '진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그를 향한 순전함.


2.

우리 보다도 먼저 물러나 있는 이미지는 '매우 먼' 세계이다. 가장 가까운 곳이자, 가장 먼 곳이기도 한 그녀. 내 속의 다른 이미지는 '나 자신에게서 끊어내기 위한'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비존재이자, '포착할 수 없는 망령'. 전체성의 방향과 반대로 멀어져 가는 '유동적' 사건은 그녀의 '거슬러간 기억'이다. 더 깊은 심연으로 이끄는 '근원적 사라짐'은 우리가 결합했던 '전혀 다른 과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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