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심연, 여기 단 한 곳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31)

by 김요섭



그것은 진실된 본능 자체 때문인 걸까? 불안 때문인가? 내가 그녀에게 물으려 들 때마다, 그녀가 얼마나 열렬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소를 안전한 곳에 놓아두려 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그녀에게 이것은 확실한 기반이었다. 그녀는 이곳에 완전히 적응했다. 그녀가 이 장소를 떠날 때는 옆 마을로 내려갈 때뿐이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 하늘과 경계가 섞여 버리는 가늘은 수평선처럼, 멀리서 바다가 보이는 산 근처까지 산책하러 갔다.


이런 믿음은 거의 모두가 품은 맹목적인 믿음을 한때 우리의 삶의 방식이었던 것 속에 심어 놓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와 같은 착각에서 자유로웠고 이 고장에서 결코 나갈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고, 그녀가 믿고 확신하는 모든 것을 이 좁은 원환 속에 모아 놓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이 원환 너머에는 부모와 자매의 창백한 형상들뿐이다.ㅡ그녀의 자매는 제자리에 있는 것 같은 세계 속에 살고 있다.ㅡ그것이 바로 그녀가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협약으로 이 장소와 결합되어 있는 이유다.


모든 것은 우리가 광활한 세계와 관계 맺는 것이고, 이 삶은 우주가 다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빈 공간들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삶을 그녀에게 더 견고한, 도시나 국가보다 더 단단한, 게다가 더 다채롭고 심지어는 더 광활한 여기 단 한곳에 집중했다. 이 공허 속에서 때때로 양자택일은 점점 소멸되고, 많든 적든 근원적인 차원으로 파고들어 가게 된다.


사람들은 그녀를 그곳의 여왕이라고 부르거나 그녀가 순진하게도 만족스러워하는 다른 별명들로 불렀다. 나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그녀를 놀리고 말 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그런 그녀의 자유로움이 나를 기쁘게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젊고 생기 있었기에, 나는 그녀를 이 수도원과 같은 곳에서 그녀가 헌신하지 않을 장소로 벗어나게 하려 했다.


그녀는 여기서 나가길 바란 적이 없었던가? 그녀는 그 밖의 다른 것들, 진짜 거리, 군중의 무리들을 보고 싶지 않았던가? "아뇨, 보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요."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은 저를 여기에서만 봐서 그래요. 의외로 당신을 즐겁게 할지 어떻게 아시죠?" 그녀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이 저에게 그런 걸 이야기하는 건 잘못이에요. 사람들이 방황하는 건 바로 그런 꿈들 때문이에요."ㅡ"네, 저요?"ㅡ"네, 당신이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당신이 떠나는 걸 막고, 필요한 만큼 여기 붙잡아둘 거라 생각해요."

(60~61p)




1.

경계가 사라지는 '광활한 세계'는 '우주가 다 담을 수 없는' 텅 빈 하늘. '수평선'은 그곳으로 열린 단 하나의 웜홀이다. '공허한 빈 공간'에 위치한 무엇보다 견고한 성채. 장소 없음은 초재적이며, 너무도 구체적인 일상성으로 향한다. 전혀 다른 평행 우주의 리좀적 배치. 기이한 푸른 바다는 가장 평범한 흔적이자, '근원적 차원'의 사라짐이다.


2.

'방황하는 꿈들'은 그곳으로 가지 못하는 무의식이다. 몽상은 정처 없는, 정처 없음이기에. 생의 구체성은 상상의 이면이자 참혹한 '의외성'이다. 끔찍할 정도로 '더 광활한' 우회로. 이 장소는 '창백한 형상'과의 '두려움에 가까운 협약'이다. 오직 계시받은 단독성의 헌신을 원할 뿐인, 새하얀 '수도원'. '유령'을 향한 몰락은, 끝 간 데 없는 심연으로 추락한다. '여기 단 한 곳'에 귀결될 뿐인, 전존재를 향한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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