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덮개를 가진, 빛

「최후의 인간」모리스 블랑쇼 읽기(32)

by 김요섭



1.

'더 넓게 퍼진 고요'는 얕은 일상성이다. 존재를 응축시키는 고통을 감내하지 못한 빛은 '어둠의 베일'을 갖지 못한다. 낮고 평평하며, 단단하기만 한 이들. 심연을 통과하지 못한 성급한 이웃사랑은 자신을 잊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결코 죽지 못하며, 죽어도 다시 소생하지 못하는 고착된 부동성. '미세한 차이'를 모르는 말인성은, 당신을 향한 '근원적 고요'에 다가가지 못한다.


2.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성당'은 모두를 위한,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공간이다. '이상한 불규칙성'이 '중심 자체가 불투명한 점'으로 후퇴하는 장소 없는 장소성. '견고한 현실'은 느닷없이 무너지고, 불확실한 목소리는 소박하게 웅성거린다. 죽은 사물들의 서늘한 '냉기'. 그녀를 둘러싼 '극도의 놀라움'은 '인간적 온기'마저 빼앗는다. 끔찍한 열기는 '신선하고 위험한 공기'와 함께 차갑게 타오른다. 순식간에 타오른 찌꺼기, 더 이상 불완전 연소는 없다. '그녀 너머'로 향하는 완전연소의 기억. 투명한 빛을 가리는 아름다운 덮개는 기이한 심도를 가졌다.




결국 나는 그녀 주위의 현실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녀 주위를 둘러싼 현실들은 사물의 순환, 우리가 머물 중앙의 큰 건물들, 기술적 배치들을 동반한 별관들, 작은 공원, 분수들에서 흘러나오는 소음, 각각의 방과 언제나 흰빛으로 빛나는 복도, 자갈들에 디디는 바깥의 발자국, 직원들의 목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리 지은 불확실하고도 소박한 목소리, 동시에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등으로 채워진 것이었다.


특히 이 공기는 신선하며 가볍고, 위험하기까지 했는데 마치 무지한 삶의 파편들을 우리 안에서 즐겁게 태워 버리려는 힘과 같았다. 언제나 자신의 중심 위로, 그 중심 자체가 불투명한 점 위에 집중되는 원환의 방식으로 이 세계가 좀 더 명확해지고, 좀 더 견고해진 것이 그녀가 거기 있었을 때였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곳. 그곳은 모든 것이 명료했다. 투명한 빛이었는데 확실히 그 빛은 그녀 너머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방에서 나올 때, 그곳은 언제나 고요하게도 선명하다. 복도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자국 밑에서 부스러지고, 벽들은 단단하고 하얗게 남아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지 않을 것이며, 죽은 사람들은 소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지나서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명했고 조금은 덜 고요했다. 혹은 근원적인 고요함과는 반대로 더 넓게 퍼진 고요. 하지만 이 미세한 차이는 감지되지 않았다. 우리가 나아갈 때, 빛을 통과하는 어둠의 베일 역시 감지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미 이상한 불규칙성들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어떤 장소들은 인간적인 온기를 빼앗겨 어둠 속으로 후퇴한다. 바로 그 옆에서는 태양의 표면이 즐겁게 빛나는 반면에 말이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성당이 공원에 세워졌다. 신실한 자들은 교회로 돌아갈 준비를 할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그녀와 함께, 그녀가 극도의 놀라움으로 바라본 그 성당으로 거의 침투하다시피 들어갔다. 그녀를 둘러싸고 침범한 놀라움은 내가 그녀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쓰러뜨릴 지경이었다. 그것은 냉기였던가? 평상시에는 거의 개의치 않았던 죽은 사물들의 호명이었던가?

(61~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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