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침묵 속에서 누설되는

「최후의 인간」 모리스 블랑쇼 읽기(39)

by 김요섭



1.

'이 밤을 가로지르는' 장소 없는 장소. '고요한 기다림'으로 다가갈 수 있는 그곳은, 깊은 심연을 통과한 '단순함'이다. 얕은 기다림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오직 침묵 속에서 '누설'되는 '근본적인 질투'. 그를 '편애'하는 일을 지속하게 하는 '고통'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가능성이다. '풍요로운' 희망, 우리 사이에 결코 없지 않은.


2.

심연에 닿지 못한 수치심은 표면에 머문 욕망. '심각한 순간'은 밝힐 수 없음으로부터 단절된다. '아무 의미 없는 비명'이자 차가운 부재. 끝없는 불면의 밤은 '알 수 없는 전복'으로 향한다. '이해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는' 낯선 기다림은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끊임없이 죽을 뿐인 '공동의 세계' 내 유일한 존재. 그로테스크한 '어린아이'는 영원회귀마저 잊는다. 오직 '생각하지 못한 생각' 안에 기억되는 끔찍한 망각.




나는 이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이 광경을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다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 광경엔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전복된 무언가가 있었다. 사실 그것이 전복시킨 건 시간이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에 목격했거나 앞으로 경험할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나는 감히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 보았다.


"당신은 저를 그 사람처럼 취급하는군요." 그녀는 분명하게 거부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그녀는 내 말에 거의 비웃다시피 했다. "그런 말을 할 사람이 또 누가 있죠?" - "아마도 다른 누군가겠죠. 제가 아는 사람 중엔 없는 것 같군요." ㅡ "그런데 너무나 무시무시했죠?" ㅡ "아뇨, 그렇지 않아요." ㅡ "아니면 당신은 자고 있었나요?" ㅡ "그런 것 같지 않아요." 내가 끊임없이 그 자리에서 맴도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당신이 알고 싶은 게 뭐죠? 당신이 이해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가 나를 알지도, 사랑하지도 않고, 나는 그저 그녀를 저 멀리서만 바라보는 심각한 순간이, 우리 공동의 세계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것과 같은 순간이 점점 다가온다는 사실에 그저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무엇을 말했던가? 나는 어린아이처럼 확신했다. 잘 들리기만 했더라면, 이 말들은 나에 대해, 그녀에 대해 그리고 그 밖의 나머지에 대해 밝혀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자포자기하듯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대답했다.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건 아무 의미 없는 비명이었어요. 저는 어쩌면 소리 지르지도 않았을 거예요."


결국, 나는 그녀가 이 광경을 통해, 근본적인 질투의 제스처를 누설한 것이 아니었을까 자문했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그에게 보이는 관심을 질투하고, 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가 나에게 보이는 관심에 질투심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를 편애하길 고수했고 고통스러운 곳으로 가듯이, 의식하지 못한 채 돌아가 버렸다. 나 역시도 그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이 생각, 너무나 인간적인,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이 생각은 나를 감동시키고, 고요함을 되돌려 주었다. 우리는 고요하게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이란 것이 우리에게 유력한 연대를 일깨우는 책임감을 의미할지라도.


나는 지금, 이 밤이 지난 후에, 이 밤을 가로질러서, 모든 것이 단순한 것이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풍요로운 것이었다고 느꼈다. 내가 그녀에게 말했던 말이 나를 엄습해 왔다. "저는 그와 대화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를 만나고 싶습니다." 내가 썼던 말은 거의 수치심에 가까웠다. 너무나 개인적인 바람에 의한 탓에 그 말은 표면까지밖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녀에게 질투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나에게만 관계된 욕망의 깊이를 일깨우며.

(7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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