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아닌 점, 고요한 함성

「최후의 인간」 모리스 블랑쇼 읽기(40)

by 김요섭



1.

'알 수도 없는 무엇'은 '광대한 지속성'에서 생성된 불가항력이다. 낯선 기호로 밀어내는 '측정할 수 없는 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비껴간' 것은 소유할 수 없는 '무한한 이지러짐'이다. 아득히 멀고, 이미 우리 곁에 있는 즐거운 고통. 무엇보다 '우월'해지는 것은 어떤 높음도 없는 '무력함'이 아닐까. '지칠 줄 모르는 탐문'은 극단을 넘나 든다.


2.

'잔인한 죽음' 앞에 선 최후의 인간. '날카롭고 세밀한' 통증과 제어할 수 조차 없는 생생한 환각. '뿌리칠 수 없는 단 하나의 추억조차' 허락하지 않는 혼란은 나를 가장자리로, 다시 바깥으로 내몬다. 고요한 함성을 내지르는 '침묵이 아닌 점'. 혼란스러운 욕망이자 '나를 이 지점에 못 박는 고통'. '수줍은' 물러남은 '조용한 뒷걸음질'이 아니기에. '현재를 시험하는 점'은 용솟음치는 태양의 검은 점이다. 너무도 생생한 코나투스이자, 끔찍한 타나토스.




하지만 이 말들은 내가 보기에 옮겨 가지 못한 것 같다. 이 말들은 얼마나 수줍고 얼마나 불가항력적인지 알 수도 없는 무엇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그것은 여기까지 인도하기 위해 광대한 지속성이 필요했던 한낯 청춘의 욕망이었다. 그리고 나와 관계되고, 내가 원하는 것만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말하고 있던 건 정확히 지금, 마치 나의 가장자리와 같아서 내 손이 지금 닿을 수 있는 곳, 바로 저기 앉아 있는 젊은 여성, 그녀였다. 그런데 왜 그녀는 그렇게 혼란을 느꼈던 것일까?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슬픔으로 인해 여러 질문으로 그녀를 괴롭히는 바람에, 그녀가 원망의 눈초리로 나의 지칠 줄 모르는 탐문을 거부하고, 뿌리칠 수 없는 단 하나의 추억조차 원하지 않게 된 것 일까?


밤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그녀에게 "얼마 전부터 당신이 매우 조용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내 말에 이렇게 지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저는 조용하지 않을걸요." 그리고 그녀는 고민 속에서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말할지를 생각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저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면서도 침묵 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극도로 순수한 점, 점과 같은 것이 있지요. 저는 그 점을 느껴요. 전혀 침묵이 아닌 그 점을." 이 대답은 나에게 마치 그녀가 설명한 점이, 그리고 또한 현재를 시험하는 점이 되었다.


이 고통은 너무나 날카롭고도 세밀해서, 아직 먼 것인지, 이미 절대적으로 우리 곁에 현존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다가온다 해도, 우리가 그 점을 제어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이 점이 시험하는 것, 나를 이 지점에 못 박는 이 고통, 하지만 그 고통은 즐거움의 기호들을 지닌 불안을 통해 나를 여기, 저기로 밀어낸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거기엔 내가 비껴간 불분명한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래서 나는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그와 연관된 것이자 그를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과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은근히 혐오의 이름을 붙이는 이 나쁜 장소에서 그가 떠나 버렸을 때 나는 진정할 수가 없었다. 거의 피곤하지도 않은 상태로, 나의 추억에서보다 현실에서 그가 얼마나 더 약해졌는지 ㅡ 단지 더 약해진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ㅡ 확인하면서 매번 당황스러움에 빠졌다. 그것은 마치 측정할 수 없는 힘이 스스로와 싸우면서 스스로에게 말 거는 것과도 같은 이치인데, 힘은, 이 이름을 부여하기에 무한한 이지러짐을 통해 무엇보다도 우월해지지만, 지금은 어떤 지고성도 가지지 못한 무력함이기도 하다. (너무나 강한 죽음을 직면한 한 인간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잔인한 죽음을 회피하는 모든 인간은 잠시나마 새로운 차원에 관한 숙고를 하기 마련이다.)

(73~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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