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다리며, 나를 기다리는

「최후의 인간」 모리스 블랑쇼 읽기(41)

by 김요섭



1.

'너울지는 그늘'은 은밀한 죽음이다. '불분명한' 시선은 나의 기대를 벗어난 곳에서 '느긋하게' 바라본다. 꿰뚫어 보지 않으나 '날카롭고 섬세한' 침투의 흔적. 명증적 요구 없는 바라봄은 우리를 향해 '더 확장'하며 다가선다. '고통스러운 작은 미소'. '죽음을 기다리는', 비스듬한 얼굴은 바깥으로 향한다. 너무도 자명하나 무엇보다도 모호한 기울기.


2.

'추억 가장 먼 곳에 침투한 고통의 형상'은 우리를 갈라놓는다. 순식간에 텅 빈 존재는 다른 어떤 '기준'도 아닌, 끝까지 낯섦에 의해 상처 입는다. '한계 없는 연약함으로' 찌르는, 우리를 향해 더 깊이 박힌 칼. '온화하며', 날카로운 질감은 진득한 피를 생성한다.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는 침묵은 '더 끔찍한 고통'. 느닷없이 도착한 아이러니는 '은밀한 균열'이자 '어긋난 미소'이다. 환대를 위한 해체라는 기이한 변명.




그는 또 은밀한 곳에 존재하며 죽음을 기다리고, 우리를 기다렸다. 그가 위독하지 않다는 사실을 전혀 확신할 수 없었다. 그토록 날카롭고 섬세한 점은 더 날카롭고 섬세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게임 테이블 가까이에 있었고 그는 소파에 있었는데 몸은 다소 흐트러진 모습이었으나 우아함을 지닌 태도는 여전했다. 나는 종종 같은 자리에 있는 그를 본 적이 있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 채, 가파르게 내쉬는 가슴팍 쪽으로 머리가 기울어져 있었다. 그가 쓴 펠트 모자는 얼굴 위에 너울지는 그늘을 만들어 냈다. 오늘은 기분도 최고였고, 안색도 역시 최고였다.


아마 그는 내가 그를 시험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는 잠깐 내 쪽을 보았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시선을 자신에게로 내리깔았다. 그러고 나서 내 쪽으로 몸을 일으켜, 점점 더 확장되어 왔다. 하지만 내가 바랐던 꿰뚫어 보는 시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시선은 불분명하지만 나에게 잘 고정되어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의 시선이 닿는 범위가 너무나도 넓어 마치 이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의 면적을 다 포함하고 있을 정도로 나를 느릿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나의 기대와는 어긋난 이런 방식으로 그가 나를 쳐다보는 동안 그가 미소 짓기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작은 미소, 어쩌면 아이러니하고, 어쩌면 부재할지도 모르는. 그 미소는 갑작스럽게 영향력을 발휘했다. 나의 추억 가장 먼 곳에 침투한 고통의 형상으로 다가와 순식간에 나를 상처 입혔다. 그 고통은 단지 그 사람이 겪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의 고통인, 한 점이 환기하는 것이었고, 우리의 기준도, 무엇보다도 그의 기준도 아닌 방식으로 그가 고통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그제야 발견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나는 거기에서 너무도 많은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나는 그녀를 생각해 내곤 그녀를 부정했다. 유년의 고통보다도 더 끔찍한 고통을. 그에게 너무나 깊이 침투했을 그 고통은, 한계 없는 연약함보다 더 가시화되었다. 고통이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이 부드러움이다. 초기에 사람들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고통스러우십니까?" 그는 늘상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이 "아니오"는 아무리 온화하고 참을성 있고, 거의 투명한 희박함에 가까운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고통을 부드럽게 거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미지의 고통으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다. 신음조차 내지 않아서 사람들은 가장 밝은 낮보다도 자명한 고통을 물어볼 수도, 불평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 "아니요"는 언제나 "네"라고 대답하는 한 남자에게는 가혹한 것이었다. 그는 은밀한 균열의 지점을 드러내고, 우리를 주시했던 그 영역을 가리켰다. 그리고 실종자들과 같은 우리의 고통조차도. "태도는 친절해도 그는 왜 '네 조금 고통스럽습니다'라고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75~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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