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이자 불가능성인, 어떤 침잠

「최후의 인간」 모리스 블랑쇼 읽기(42)

by 김요섭



1.

'심장이 죄이는' 통증은 종말의 순간 되살아 난다. 나를 온통 흔들어 놓는 헐벗은 고통. 가장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도저히 좁혀지지 않은 채 밀착된다. 우리 사이를 걷고 있음에도 혼자인 '끔찍한 공포'. 새로운 기회라고 말하기에 너무도 차가운. '다른 삶'은 '멈추어 선 채로' 끌려갈 뿐이다. 어떠한 '연대의 기호'도 막을 수 없는, 절대적으로 낯선 분리.


2.

우리 사이의 텅 빈 장소는 '낭비된 기회'이자 전혀 다른 형식이다. 고통마저 '허락된 유일의 순간'. 도무지 알 수 없는 비존재의 발걸음은 '나를 온통 흔들어' 놓는다. 중단되면서 중단되지 않는 '엄청난 소음'. '고통스러운 완전성'에 내맡겨진 몸은 '이 기회를 통해 사랑받고자' 한다. 이름 없는 자의 극단적인 욕망. 도저히 '즐길 수 없는' 당신을 환대하길 바라는 찰나의 순간, 기괴한 얼굴은 검은 형체 사이로 물러난다. '은근히 암시'된 '어떤 침잠'.




이 말은 과연 연대의 기호일까? 그는 자신이 겪는 일을 소통할 수 없을지도, 어쩌면 그가 겪는 고통을 거두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도 모르지." 그러므로 그는 죽어 가고 있지만, 고통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종말에 다 달아 견디지 못하게 되면 고통이 그때서야 되살아날까 봐 우리가 걱정했던 이유였다. 나는 감히 그녀의 얼굴에서 읽어 냈던 것을 말할 수 없다. 내게 일종의 공포감을 느끼며 대답한 그녀가 나를 온통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고통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죠? 생각할 때 그는 고통을 느끼고, 생각하지 않을 때조차 헐벗은 고통을 느껴요." 게다가 그녀는 단순 명쾌하게 덧붙였다. "그에게는 아마도 잠시 잠깐, 고통이 아닌 짧은 생각이 필요한지도 모르죠. 저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애써 이 찰나의 순간을 마련해 주려 했던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그에겐 고통을 부여잡고,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도록 허락된 유일의 순간인 것이었을까? 단 한순간, 그러나 궁극의 순간? 이 무슨 고통스러운 완전성인가? 도대체 어떤 감정인가? 그는 그녀와 우리를 어떤 침잠을 향해 끌어들이는가?


이미, 그녀가 좀 전에 그를 동반하면서 그는 게임 테이블 뒤에서 멈추어 선 채로 끌려갔다. 자신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실히 오래 견디지 못했다. 엄청난 소음 속에서, 사람들이 함께 거쳐가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그를 접촉하지 않고도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도 그가 불편하지 않게 거리를 두고 가볍게 머물러 있었다. 나는 심장이 죄이는 것을 느꼈다. "자, 바로 일어날 게 일어났다." 그들은 같이 있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의 곁에서 걷고 있음에도 그녀는 혼자인 것처럼 보였다.


마치 우연히 거기에 있던 사람인 것처럼. 그녀만의 판단으로 가는 것처럼.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은 나와의 분리를 키웠고, 그것은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그 분리에 어쩔 수 없이 내맡겨진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만큼 멀리 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승강기를 열어 주었고 그가 좌석에 앉을 동안 문을 잡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함께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강기의 도르래가 내는 삐그덕거리는 소음은 다시 그녀가 돌아와도 중단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싶었다. 그녀를 놀리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은근히 암시하려 들었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삶들에게도 그랬다. 그녀는 그런 데서 즐거움과 가벼움 그리고 기회를 낭비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기회를 통해 사랑받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번엔 그녀가 그런 걸 즐기지 않았다.

(76~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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