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인간」 모리스 블랑쇼 읽기(43)
1.
짙은 어둠 가운데 '메마른' 곳을 향해 뻗은, 붉은 손. '보이지 않는 쇠락'은 당신을 위한 '불평'을, 낯선 '호명'으로 대신한다. '모든 음악적 성질을 빼앗긴' 끔찍한 고요. 우리를 '흩어지게'하는 생생한 '무게'이자, '느린 고통'은 밀려온다. '오로지 더 혹독한 침묵'은 우리를 향한 유책성의 호소. '무한한 인내'는 살점이 뜯기고, 피 흘리는 일을 감내할 뿐이다.
2.
'결코 형상화할 수 없을 불만'은 망각된 기다림이다. '다시 일어날 일 없는 최고의 순간'을 지나버린 존재에게 남겨진 서늘한 일상.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신랄함이 섞인 대답'. 차라리 몰랐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를, 낯선 '테러'. '아프고 고통스러움'에도 그곳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기괴한 중독. '전혀 다른 고요함과 부동성'을 가진 존재는 도무지 응답하지 않는다. '무한의 고통이 상연되는 연극'에서 프로메테우스는 다시 한번 불을 훔칠 수 있을까?
그녀는 닫히고 굳어버린 표정으로 이만큼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근심이 없었지만 결코 형상화할 수 없을 불만 때문에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나는 곤란해져서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계속 이러한 상태로 있으면? 나는 그녀를 놀라게 해서 잠을 깨웠던 그 밤을 기억해 냈다. 내가 그녀를 만지자 그녀는 너무도 소스라치며 물러섰다. 설사 그것이 테러에 가까운 것이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그녀를 만지는 것에 성공했는데, 그 순간은 최고의 순간, 다시 일어날 일 없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계속 그럴 수 있을까? 언제나?
그래서 뻔뻔하게 그녀에게 그는 고통받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이고, 그녀는 얼마나 민첩하게 신랄함이 섞인 대답을 했는지. 그 대답 앞에서 지금까지도 그녀나 나나 모두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원망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고통의 공간에 다다르는 것을 막기 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 자신을 원망할 뿐이었다. 그 고통의 공간으로 그녀는 분명 몸을 돌려 끊임없이 되돌아갔을 것이다. 멀어졌다가도 다시 되돌아가 부동성과 고요를 지켜 내면서. 그 부동성과 고요함이란 내가 지금에 와서야 조금 이해하게 된 것인데, 그는 내가 거기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고요함과 부동성을 지녔었다.
그 고요함은 매우 아프고 매우 고통스러운 사람들 옆에 놓인, 고통스러운 떨림을 덜어 주기 위한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엔 어떤 고요함도 양산되지 못했다. 오로지 더 혹독한 침묵, 게다가 험하고도 힘든 소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침묵과 소음은 끔찍하리만큼 모든 음악적 성질을 빼앗긴 상태였는데, 여기 있는 모든 장소와 사람들의 드나듦을 괴롭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밤마다, 불평과 호명은 동정심을 끌지 못하는 메마른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부르지 못했고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느린 고통은 고통과 그가 관계 맺을 수밖에 없었던 보이지 않는 쇠락과도 같았는데, 이 고통이야말로 그가 아무리 무한한 인내심으로 침묵 속에서 이용하려 해도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 고통은 우리 주위에 있다. 그것이 가벼운 만큼 무겁게 우리를 밀어내고 갈라지게 하고 끌어들였다. 흩어지게 하면서.
그가 너무 일찍 사라졌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고통이 그를 살아남게 했다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러다 곧 이런 생각에 빠져본다. 그는 이미 사라졌나?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고통의 침묵을 지키는 생생한 현존이자, 끊임없이 살고, 일하고, 죽는 삶의 무게 하에서, 그리고 이제부터는 우리와 함께 머무를 무한의 고통이 상연되는 연극뿐 아닐까?
(78~8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