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 초원, 나무보다 큰 아이가 쫓기고 있다. 사냥꾼은 뷰파인더로 아이를 겨냥한다.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는 아이는 너무 커서 숨을 곳이 없다. 거대한 아이에게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와 꽂힌다. 사냥개는 성난 발걸음으로 달려온다. 쓰러진 아이의 눈에 코끼리 모습을 한 사냥꾼이 클로즈업된다.
환경을 지키다가 사라지는 불행한 죽음이 있습니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벌목을 막기 위해, 코끼리의 불법 사냥을 막기 위해 고독한 싸움을 하는 대가는 죽음으로 돌아옵니다. 코끼리를 쏘는 총은 언제든지 사람을 향해 겨눌 수 있지요. 이름 없는 환경 운동가, 코끼리의 죽음은 새하얀 상아와 교환됩니다.
사바나 초원 어딘가, 아마존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죽음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그림책의 '아이'처럼 쫓기다가 죽어 해체됩니다. 열대우림의 나무 한그루, 사바나 코끼리의 상아는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숨이 끊어지면 소유물로 교환됩니다. 거대한 자본의 논리 앞에 힘없는 생명은 아이처럼 벌거벗겨집니다.
그들은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라고 말한 존재입니다.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수단도 갖지 못한 생물학적 생명만 간직한 존재입니다. 이는 단지 인간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멸종해가는 북극곰부터, 꿀벌, 남극의 펭귄까지 지구 곳곳에서 그들은 목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그들의 죽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죽음을 소비하며 살기 때문이지요. 지구에서 같이 살아가는 타자 아닌 타자의 죽음에 우리는 책임이 있습니다. 단지 눈앞에 보이는 죽음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는 가운데 사냥은 계속되고 상품으로 시장에 전시됩니다.
죽음보다 무서운 무감각
아이의 거대한 입이 벌어지며 새하얀 이가 반짝인다. 톱과 해머를 든 코끼리들이 해체 작업을 시작한다. 거대한 이빨 하나가 줄에 묶여 운반된다. 온전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크기에 따라 분류해 놓은 이빨이 거대한 진열장소에 빼곡히 펼쳐져 있다. 수많은 코끼리 인간은 줄지어 아이의 이빨을 사 간다. 조각상을 만들기도 하고 담배 파이프, 지팡이도 만든다. 공예품은 아케이드에 전시되고 그들의 욕망처럼 붉은색의 쇼핑백에 담겨 판매된다.
아이의 고통과 죽음은 전시되고 팔리며 사라진다.
벌거벗은 아이의 고통은 해체되는 과정에서 소진됩니다. 이빨의 등급에 맞게 분류되고 가격을 매기는 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죽음은 최종 상품의 가격으로 환원됩니다. 아케이드에서 전시된 물품을 맞이하는 소비자는 모든 것을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완벽하게 지워진 죽음의 이미지.
오직 '좋아요'라는 긍정성만 쇼핑백에 담깁니다. 그러나 쇼윈도에서 사라진 것은 부정성만이 아닙니다. 밝은 조명, 화려한 거리의 사람들 틈에서 사라진 것은 우리의 인간성이자 공감하는 능력입니다.
인간은 긍정과 부정, 좋음과 나쁨, 밝음과 어둠이라는 양면을 가진 존재입니다. 한쪽 날개를 잃은 새가 하늘을 날지 못하듯 억지로 제거된 슬픔, 고통, 죽음의 이미지는 결국 인간에게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