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고자 하는 욕망에 비해 현실은 녹록지 않지요. 만약 여러분이 이런 결심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나는 이제부터 존재 전체로 살겠어. 내가 느끼고 생각한 대로 진실만을 말할 거야.’
오늘부터 여러분의 결심대로 행동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학생이 선생님에게, 직장 후배가 선배에게 마음속에 담아둔 진실을 모두 말한다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관계가 파탄날 정도로 심각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자유, 자신이 느낀 대로 사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기에 우리는 적절히 타협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떨 때는 가면을 쓰기도 하고, 눈치도 보고, 순응하며 살아가겠지요.
파르헤지아
여기에 범상치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림책이라는 쉬워 보이는 외피를 하고 있지만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책은 우리의 딱딱한 일상을 향해 망치를 휘두르며 균열을 내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안온한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는 삶도 있어. 목숨을 걸더라도 진정 자기 자신으로 살아보는 것이 멋있지 않아?’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멋진 이야기가 과연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날 것인가요?라고 반문해보면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합니다.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스토리의 겉만 대충 읽는다면 이는 현실 긍정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주인을 떠난 염소가 결국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만다는 알퐁스 도데의 서사는 ‘자유를 위한 멋진 삶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해.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 현실이야!’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재 전체로, 진정 자신의 모습으로 산다는 것에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어째서 쉽게 오해하게 되는지 스스로를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자유롭게 살겠다고 고집부리면 너만 힘들어. 세상이 만만해 보여? 그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야!’라는 식으로 말한 적은 없나요? 그림책 첫 페이지의 대화처럼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조언이라며 노회 한 표정을 하고 현실적 충고를 하며 살지는 않나요? 우리는 바라는 삶과 감내하는 삶의 괴리가 크다는 것을 이야기를 읽지 않고도 체득하여 살고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현존재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숨겨둔 이상의 껍질을 숨긴 채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부끄러움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쩌면 다른 이에게 해주는 조언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비겁함을 감추는 덮개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이 무조건 남루하다고 공격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토대는 냉정하리만큼 공고하기 때문이지요.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꿈 꾸는 인생에게 주어지는 대가는 혹독하기만 합니다.
사유는 폭력적으로 온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그림책은 좀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림책은 아동을 대상으로 하기에 해피엔딩의 결말을 선호하지요. 영화로 치자면 유럽 영화보다는 할리우드 영화에 가깝습니다. 대중이 선호하는 이야기로 많이 소비되기 위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본의 논리에서 쓰인 이야기 구조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나타나지요.
이와 달리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기 좋아하는 유럽 영화가 있습니다. 유럽의 예술영화들은 어떨 때는 대놓고 불편함을 느끼라는 듯 관객을 고통스러운 사유의 지점으로 몰고 가지요.
들뢰즈의 말처럼 ‘사유는 폭력적으로 옵니다.’
우리의 인식체계에 평소의 논리나 선입견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들어오게 될 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해되어야 합니다. 간혹 불가해한 것을 마주할 때 우리는 가시가 목에 박힌 것처럼 고통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사유가 폭력적으로 온다는 말의 의미는 관성적 행위를 멈추게 하는 사건을 마주하고야 비로소 성찰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시가 목에 걸리지 않고서 그것의 존재를 사유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스갱 아저씨의 염소 이야기는 독자를 일상에서 멈추게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사유하기를 강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힘없는 염소의 죽음이 상징하는 것은 유럽 예술영화를 보는 것처럼 강렬하고 폭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헤밍웨이의 문장으로 그 죽음을 읽는다면 인간의 조건을 담은 비극의 서사가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요? 그럼 다음 편에서 좀 더 풀어나가기로 하고, 이제 자유를 획득한 존재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처연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속으로 떠나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