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적을 위한 결단
한병철 읽기, 폭력의 정치, 9월 2일 단상
슈미트, '정치적인 것'
슈미트에게 정치적인 것은 반복적인 일이나 프로세스가 아니다.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긴장이며 완전히 새로운 것이 생성되게 하는 가능성이다. 성과주체의 '할 수 있음'에는 정치적인 것이 없다. 진짜 할 수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달아난다.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겠습니다'라는 바틀비적 부정성은 성과주체의 프로세스에는 입력되어 있지 않다. 투쟁할 줄 모르는 성과주체는 왜 경쟁하는지도 몰라서 허기져 있다. 경쟁의 본질이 자신으로 향하는 채찍이기에, 이길 수도 없지만 그는 계속하다 결국 소진된다.
결단주의
투쟁하는 과정체는 비로소 존재가 된다. 건너가려는 자는 단호하게 잘라내야 한다. 토론이나 합의가 아닌 독단성이 필요하고 이는 단독성의 전제가 된다. 과거의 습관들의 의회주의를 계속 견디는 적당한 민주주의로는 그의 과업은 불가능하다. 지속성과 내재적 강도는 결단과 투쟁이라는 극단을 허용하는 이미지에서만 생성된다.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은 합의로 창작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는 부정성의 칼을 드는 것이다.
'정치는 화해하고 중재하는 것이 아니라, 습격하고, 제압하는 것이다. 삶은 진짜 투쟁, 이 극단적 가능성에서, 즉 폭력에서 그 특유한 정치적 긴장을 얻는다.' - 슈미트
칼을 들어서 잘라내야 할 적이 뚜렷하지 않기에 우리는 힘들다. 정말 사랑하는 타자, 자신의 과업, 무한에 맞닿는 아름다움을 모르기에 그것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결단을 모른다. 성과주체의 프로젝트는 자신의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은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 작품을 창조할 수 없다.
단 하나의 진정한 적 앞에서 그는 자신일 수 있다. 긴장감 속에 칼을 쥐고, 타자와 나의 거리, 그의 움직임과 나의 숨소리가 느껴질때 비로소 자신의 함량과 존재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