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결단주의적 단호함은 타자와 적극적으로 관계 맺기를 모른다. 자신의 과업을 위해, 진정한 자유를 위해 칼을 들어 사정없이 베어버린 결과 그는 홀로 남았다. 전사는 끊어버릴 수는 있어도 용인하고 다시 한번 긍정하는 사랑을 알지 못한다.
칼과 몸에 묻힌 타자의 뜨거운 피는 그것이 식어버린 이후의 공허를 감내해야 하지만 사자가 존재의 허기를 온전히 감당하는 순간은 오직 이빨을 드러내어 적과 마주할 때뿐이다.
관대함의 정치
사자는 관대함을 보이려 한다. 그러나 적은 그의 '나는 원한다'라는 말을 우정의 표시로 이해하지 못한다. 타자의 눈에 그는 굳어버린 핏자국과 그르렁거리는 아가리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처럼 흉폭한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타자는 그의 관대함에 몸을 굽히지만 우정을 맺을 수는 없다. 전사는 다시 홀로 남는다.
우의의 정치는 최소한의 연관성으로 최대한의 접속을, 최소한의 친족성으로 최대한의 가까움을 만들어 낸다. -한병철
사자는 다시 한번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에서 변신을 시도한다.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태도로 타자와 선을 긋는 것은 상대주의적 독백밖에는 남지 않는 것을 깨닫는다. '타자의 그러함'을 그도 모르는 몫까지 용인하고 긍정하는 환대 말고는 이 대지의 삶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사자는 알아챈다.
그 순간 사자는 아이처럼 웃는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아침놀이 떠오른다. 사자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걷기 시작한다. 그의 발걸음이 아이처럼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