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 읽기, '심리학적 문제인가', 9월 1일 단상
'인간은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성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자유롭게 되면 될수록, 또한 더욱 개인적으로 되면 될수록 사랑이나 생산적인 작업의 자발성 안에서 외부 세계와 결합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자유와 개인적 자아의 완전성을 파괴하는 외부세계와의 유대에 의해 일종의 안전함을 구할 수 있을 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에리히 프롬
내재성
자연의 지배, 절대주의와 종교의 지배에서도 벗어난 인간은 자유를 획득한 듯 보였다. 하지만 외적 지배를 없애는 것으로는 결코 자유에 다다를 수 없었다. 진정한 자유는 내적인 강도를 지니는 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프롬의 문장 중 '사랑의 자발성 안에서 외부 세계와 결합하든가'는 다음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내적인 자유는 동시에 무한이라는 바깥으로 열린 자유일 때만 고유한 내재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존재의 허기
분리된 존재로서 인간은 현실의 조건 앞에 나약하다. 불안과 공포, 존재의 허기가 수시로 밀려드는 것을 감내하기란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분리가 곧 자유는 아니기에 내적 강도가 없는 존재는 결국 외적 권력에 다시 자신을 의탁하고 만다. 수동성을 띤 자유는 심리적으로 규율 권력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정신의 세 가지 변화(니체)
낙타는 사막이라는 헤테로토피아에서 사자로 변신한다. 수많은 날을 무거운 짐을 나르던 힘은 드디어 광야라는 공간에서 변신을 경험한다. '너는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용의 목을 치는 것이다. 하지만 전사로 변한 사자는 자유롭지만 아직 자유를 모른다. 수동적 자유는 획득했지만 능동적 허무는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의 허기는 그가 칼을 휘두르지 않는 순간에 도래하기 때문이다.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자는 다시 변해야 한다. 믿었다는 사실마저 씻어내고 죽음 충동에서 촉발된 칼을 생의 충동의 꽃으로 바꾸어내는 창조적 과정에서 내적 강도는 만들어진다. '망각하는 아이, 스스로 돌아가는 수레바퀴, 유희하는 인간으로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기에는 연금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과정체만이 고유하고 단독적이며, 자유로부터 도피는 그가 계속하는 한 유예될 수 있다.
'자유로운 인간만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스피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