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용기
반 고흐의 편지, 9월 18일 단상
더 많은 것을 원하며 모든 것을 잃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서늘한 용기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하며 모든 것을 잃는다. 몰락은 그의 충동이 아니라 파토스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과업의 강도를 유지할 때, 그는 모든 것을 잃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다.
매일의 부단한 노력이 단 한 번의 사건을 만든다. 그를 격렬히 반대하는 역류와 날카로운 돌에 찍힌 몸을 이끌고 계속하는 유영. 순간 그는 온전히 자신이며, 존재의 허기는 '완전연소'된다. 그의 날갯짓은 거침없이 일상의 이면으로 향하며, 풍크툼은 그의 현존에 각인된다. 그는 비로소 더 낫게 실패한다.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 반 고흐
더 많은 것을 원하며 모든 것을 잃지 않으려는 자
더 많은 것을 원하며 모든 것을 잃지 않으려는 자도 있다. 위험을 회피하며 끔찍하게도 건강을 챙기는 이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안전을 달라 그러면 당신에게 위험을 보여주겠다." 그들은 살뜰히 영양제를 챙기며 조심조심 걷기까지 한다. 생존을 위한 그들의 몸짓은 살아있기엔 너무도 죽어있을 뿐이다. 삶의 어떤 바깥도 없는 이들은 눈을 껌뻑거리며 어디가 더 안전한지 묻는다.
그들은 미로에 갇힌 인간의 조건을 모른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없는 액체근대는 어디든 미궁이며 도주로는 없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토대 자체가 유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각하지 못한다. 안전만을 생각할 때 삶은 지속될 수 없다는 진실은 허황된 소리일 뿐이다. 비록 탈주하지 못해도 구원의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결코 알 수 없다. 재앙의 아름다움은 태풍의 눈에 잠시 머물기 때문이다. 그들은 태풍 속으로 자신을 던질 수 없다. 미로에 갇힌 채 두 눈을 껌뻑거릴 뿐이다.
'사람들은 바다로 나가면 익사할 위험이 크다고 말하지만, 나는 부인한다. 그 말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위험의 한가운데에 안전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고 있는 것 같다.' - 반 고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