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에요, 요점만 말해줘요.'는 불능을 낳는다. 가능한 것만 말하라는 요구는 강탈이다. 합리성의 탈을 쓴 언어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낯섦을 지운다. 매끄럽지 않은 목소리는 효율성의 요구 앞에 짓이겨진다. 닭가슴살만 도려내서 먹어치우는 인생, 프로틴에 도드라지진 근육은 참 퍽퍽하다. 그러나 요약될 수 없는 언어는 당신의 서사다. 깡통처럼 으스러진 이야기는 다름 아닌 너의 존재다.
네 속에 있던 진짜 가능은 무엇이었지? 담길 기회조차 없던 불가능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 나는 기억 속을 더듬어본다. 깊은 곳, 손을 뻗어도 잘 닿지 않는 구석에 무엇인가 있다. 짙은 어둠 속 웅크리고 있던 어린아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의 두 눈에 분노가 잠시 일렁이다가 허공을 바라보듯 무감하게 변했다.
'나는 타협이 불가능한 요소를 타협시키고 허리춤에서 조상의 짙은 어둠을 끌어내어 내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빛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내 의무, 하나뿐인 내 의무라고 느꼈다. 우리의 일생이란 짤막한 섬광이지만, 그로써 충분하다.' -카잔차키스
나는 왜 쓰는가?
모순을 끌어안은 채 지치지 않고 계속하고 있는가? 짙은 어둠 속에 제대로 들어가긴 한 건가? 문득 그곳에서 본 아이가 의뭉스럽다. 어차피 어떤 새로운 형식으로도 더 이상 설득이 불가능한 시대 아닌가? 그렇다고 인류의 종말을 위한 씨앗처럼 스발바르의 종자 저장소에서 기다리면 될 일인가? 보관될 씨앗도 아닌 글을 왜 쓰고 있는가.
'그것은 벅차고 끝없는 의무이다. 나는 평생, 그리고 지금까지도 투쟁하지만, 어둠의 침전물은 언제나 마음속에 남아서 싸움은 항상 다시 시작된다.' -카잔차키스
나의 파토스는 벅차지 않다. 차갑게 식은 아이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불가능만 남은 느낌도 든다. 우여곡절 싸움은 계속되겠지만 식어버린 닭가슴살을 씹는 일처럼 텁텁할 것이다.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침전물은 시대와 불화의 찌꺼기이거나 흉내 내다 남은 여분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