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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요섭 Feb 08. 2024

균열시키며, 틈새를 벌리는 읽기

롤랑 바르트,「텍스트의 즐거움」 읽기(24)



1.

  '존재하는 이름'을 제거하는 텍스트는 말하지 않는다. '즐김'에 다가선 파괴. 혀끝에 맴도는 이름은 쪼개지며, '이름 짓기'를 해체한다. 오이디푸스와 '아버지의 죽음'. 이야기의 상실은 문학이 그 힘을 잃어버린 것과 괘를 같이한다. '역사적 명료함'과 '존재하는 사물의 완강함' 사이. 불임의 텍스트는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할 수도 없다.


2.

  균열시키며, 틈새를 벌리는 읽기는 '변태적'이다. '결말을 알고' 있으나 즐거워하는 기이한 독서. 비극의 이야기는 오이디푸스적 서사를 비틀며 생성된다.


3.

  도무지 '위반'할 수 없는 감정. '아무도 원치 않는 것'은 '의식 속에 남아있는 광기'이다. 마지막까지 여전히 주체로 남기를 강요하는. '절대적 내밀함'은 주체를 그대로 두며 '분열' 시킨다. '순응하는 기표' 가운데 떠오르는 어떤 '즐김'. 이상한 공포는 '글쓰기를 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서로 분리된 채 거리를 두는, '별로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를 관계.


(92~96p) 텍스트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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