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 읽기(7), 윤리와 무한, 9월 24일 단상
사유는 폭력적으로 온다
'사유는 분리, 폭력 장면, 단조로운 시간 가운데 갑자기 생긴 의식처럼, 어떻게 언어 형태로 표현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트라우마나 암중모색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일상의 관성적 시간 속에 갑자기 침투해 들어온 낯선 것.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질문을 모르던 그의 신체가 미세하게 변했다.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자, 사유는 기다렸다는 듯 그를 괴롭힌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이렇게 헛헛해도 괜찮은 건지...' 그는 불안하고 초조하다. 도래한 것은 존재를 교란한다.
'읽는다는 것은 규범적 관념성에 이르지 않으면서, 자신을 염려하는 현실주의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지켜줍니다.'
그때 우연히 눈을 돌린 책장에서 그는 무심코 책을 빼냈다. 가장 무용한 것이 바깥의 어딘가에서 침식해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성비와 유용성을 따지던 그의 판단은 즉시 중지된다. 유한의 시간, 협애한 통로로 들어온 비밀스러운 타자는 그의 불안을 잠잠하게 한다.
유한성 속의 무한자
이야기는 그를 바깥에 머무르게 한다. 수천 년의 시간성 속에 익은 진리는 그의 삶 속으로 들어와 구체적 현실에 관계한다. 유한의 삶에 경도된 존재에게 무한은 장소 없는 장소를 열어준다. 단절시키고 파편화되기를 원하는 시스템 속에서도 그는 '함께'를 상상할 수 있다. 더욱 낮아지고, 갇힐 수밖에 없는 현실에도, 그는 높이, 떨어져 있을 수 있다. 물론 탈출구는 없고 완전한 해결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피로 쓴 글을 읽는다고 해도 그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다만 그가 끊임없이 바깥을 지향할 때, 도주로는 순간적으로 생성될 뿐이다.
'성서가 말하는 성스러운 이야기는 그저 일련의 종결된 사건이 아니고, 세계 안에 흩어진 유대인들의 운명과 직접적으로 실제적 관계를 맺는다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는 겁 없이 그곳을 걷는다. 미로는 그를 두려워하며 재배치된다. 벽은 흐물거리며 열린다. 이 순간 그는 미로 속에 있지만, 없기도 하다. 오직 동시에 있을 수 있는 자만이 존재자다. 지향하는 존재는 각자 다른 얼굴을 가지지만 모두 같은 영광을 향한다. 가장 비현실적인 것이 가장 실제적이다. 책은 무한을 지향하는 파토스이며, 존재자를 밝히는 로고스의 언어이다. 아니, 에로스의 속삭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