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무구한 그로테스크

카잔차키스 읽기(3), 영혼의 자서전, 9월 25일 단상

by 김요섭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우리들의 몸속에는 쉰 목소리들이, 굶주린 털북숭이 짐승들이, 어둠이 겹겹이 숨어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는 말인가?' -카잔차키스


베일에 싸인 것이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을 쳐다보기조차 두렵다. 코를 잡고 있어도, 시각의 잔상과 연합한 것이 그의 후각을 후려친다. 한 번 들이마신 죽음의 체취는 눈꺼풀을 감듯 닫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보라는 요구는 베일을 들춰내더라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미세한 분무처럼 허공을 떠돌며 그로테스크한 욕망을 발설하고, 그들의 두려움을 조롱할 것이다.


'그건 내가 아니었어, 그건 내가 아니었어.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다른 사람이었어.' -카잔차키스



망각한 호모 루덴스


극한의 고통 이후 나의 욕망은 피로 목욕한 콘스탄티누스처럼 순결해졌다. 순진무구한 아이는 적의 핏물이 가득한 강에서 아무렇지 않게 뛰어놀 수 있다. 선악의 저편, 원시의 기억이 붉은 순수를 통해 비자발적으로 깨어난다. 기쁨으로 충만하다, 지독한 통증이 밀려온다. 뱃가죽이 들러붙는다, 게걸스레 먹어치운 배는 예의를 모른다. 목이 마르다, 나를 가장 뜨거운 불로 데려가 달라, 가장 차가운 어둠을 나에게 허락해달라. 나는 망각한 호모 루덴스다.


'우리의 일생이란 짤막한 섬광이지만, 그로써 충분하다.' -카잔차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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