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함부로 발음할 수도 청취할 수도 없다. 비밀스러운 이름은 대속죄일, 대제사장에게만 조건부로 발성되었다.'
표상은 타자를 하나의 전체성 안에 가둔다. 쉽게 호명된다는 것은 쉽게 잊힌다는 것이다. 그 이름이 비밀이 된 것은, 주체의 인식적 환원 없이, 사랑하는 타자를 향해 온전히 예배하기 위함이다.
인식론적 단절
절대적 타자를 향한 금기로 일상의 타자를 불러본다. 너무 쉽게 불려지는 언어로 타자를 호명하지 않기로 한다. 편견에 가득 찬 언어로 상대방을 부르며, 그렇게 타인자를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나는 단절을 원한다. 부르지 않으며 다시 부르는, 금기 아닌 금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사랑했던 타자를, 사랑하는 타자로 환대하는 일일 것이다. 데리다의 해체는 다른 곳이 아닌 지금 여기서 행해져야 한다.
일상적 타자를 환대하기
이름을 해체한 후, 나는 그녀를 부를 마땅한 언어를 찾을 수 없다. 심한 말다툼을 하던 중 순간 멈추고 만다. 한때 너무도 사랑했던 그녀는 두 손을 무릎에 감싸고 울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아니 너무도 확실한 기억으로 그녀를 호명하고 있었다. 이제 타자에게 꽂힌 무뎌진 단도는 나를 향해야 한다.
입 속의 검은 혀를 잘라낸다. 피가 솟구친다. 지독한 통증과 함께 새빨간 혀가 돋아난다. 고통 속에서 새로운 이름을 불러본다. 단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이름을....
절대적 타자는 그녀의 얼굴로 도래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분절되지도, 파괴되지도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