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읽기(3), 고통 없는 사회, 고통 공포, 9월 12일 단상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진통주체는 고통을 격정으로 언어화하지 못한다. 성과는 밝은 조명 아래 식스팩을 자랑하고, 고통은 침묵당한다. 매끄러운 그의 회복력은 무감각으로 돌아가는 능력이다. 고통은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비밀이며, 감당할 수 없는 공포다. 오직 의학이 고통의 해석을 담당한다. 더 이상 진통제가 듣지 않을 때 그는 흰 침대가 있는 곳으로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진통 정치
고통스러운 대결이 사라진 자리에 환상적 중립이 등장한다. 어떤 구체성도 뿌리도 없는 막연함이 소외된 자들의 격렬한 통증을 대리한다.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전체주의는 진통주체의 정치 미학이다. 그들은 앞서서 힘없는 자들을 조롱한다. 진통주체의 기만적 혐오는 체제의 해자(垓字)가 되어 강고한 성벽을 둘러싼다. 수평 폭력에 짓밟힌 이들의 고통은 문지기를 만날 수 있을 뿐 결코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소름과 전율
다른 것의 상대주의는 진통사회를 만든다. 독백은 타자를 향하지 못한다. 고통을 해석하는 의사 역시 진통주체의 매끄러움이 연장된 세계일 뿐이다. 그는 낯섦, 부정됨, 교란당함을 모른다. 침투할 수 없는 얇음은 존재를 익사시키고 만다. 깊은 심심함, 팔릴 수 없는 작품만이 '와(wow)'가 아닌 '소름과 전율'이라는 상처를 낸다. 매끄러운 피부가 아닌 흉터의 흔적으로 타자는 도래할 수 있을 뿐이다.
'예술은 세상에 대한 낯섦이다.' - 아도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