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되는 삶

니체 읽기(5), 학자들에 대하여, 9월 13일 단상

by 김요섭


바깥 없음


'그들의 다채로움에 비하면 나의 단순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바깥이 없다. 좁은 울타리 안의 다채로움은 교양의 나라의 알록달록 함이다. 재주 많은 손가락은 실을 꿰고 짜는 법을 알지만, 고작 색색의 모자이크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왜 정신의 양말을 짜야하는지를 모른다.

성과주체의 산만함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성형과 식스팩,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며 자신을 가꾼다. 그들의 매끄러운 건강함 역시 바깥이 없다. 오직 건강이 목적이 되었을 때, 진짜 건강함은 사라지며, 생존의 울타리는 더욱 그를 조인다. 효율성을 희망당하는 최적화한 몸은 기계를 닮아간다. 왁싱으로 뽑혀버린 털처럼, 성형 수술 후 부산물처럼 존재는 그렇게 사라진다. 바깥이 없는 이는 안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생존할 뿐이다.



좀비


그들은 살아있으나 너무도 죽어있고, 죽어있기에는 너무도 살아있다. 좀비가 기웃거리는 신선한 육체는 너무 다채롭다. 눈앞에 가까운 적을 향해 기계처럼 쫓고, 이빨로 물어뜯지만 언제든 대상을 바꿀 수 있다. 그의 눈에 세계는 움직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뿐이다. 세밀하지 못한 그들의 눈은 알록달록함을 구별하지 못한다.



쓰레기가 되는 삶


상대주의적 다채로움은 구체적인 결단을 불가능하게 한다. 최적화는 가능하지만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저 피에 굶주려 색색의 육체를 쫓고 있지만 왜 달려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적이 명확하지 않기에 진짜 결정을 내려야할 순간에 주저한다. 단호함을 상실한 주체는 뱀장어처럼 미끌거린다.


결단 없는 맹목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가린다. '그것을 그들 집의 방음판'이라고 한 니체의 말은 진실이다. 바깥의 손님을 향해 문이 열리지 않는 집은 감옥이 되고 스스로를 가두고 만다. 살았으나 산 적이 없는 인생.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쓰레기가 되는 삶이다.


'나는 나의 사상들과 함께 그들의 머리 위를 걸어 다닌다.... 왜냐하면 인간은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가 그와 같이 말한다.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들은 감히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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