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자에게 무한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관성적인 유한성의 껍질은 고정되어 있으며 둔탁하다. 선입견의 표상을 찢어놓는 것은 주체의 의지가 아니다. 극단을 허용하지 않는 이미지까지 나아가는 주체에게 불가능의 가능성은 도래한다. 무한자는 저 울타리 너머에서 그를 보며 미소 짓는다.
고통스러운 움직임을 지켜보던 절대적 타자는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시공간의 빈틈이 잠시 열린다. 바깥의 낯섦에 공명한 순간, 그는 격렬하게 불타오른다. 단 한 번의 만남에 돌이킬 수 없는 심연으로 떨어지고 만다. 완전히 분리된 그는 죽었으나 아직 죽지 않았다. 아득히 깊은 곳에서 미약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타자의 얼굴을 향해 그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재속에서 돋아난 것이 피닉스의 날갯짓을 시작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타인자, 표상 불능인 것, 파악 불능인 것, 즉 무한 -그것에 대해 나는 무관심으로 있을 수 없다- 그것이 나를 인간이라는 존재자가 나타나는 표상 형식을 찢어놓으면서 소환한다. 그리고 타자의 얼굴을 통해, 어떤 달아날 구멍도 허용하지 않고 나를 유일무이한 선택받은 자로 지명하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우발적 마주침, 완전연소 후 그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죽음은 그를 고통에 민감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는 타자의 아픔을 마치 전신화상을 입은 것처럼 격렬히 느낀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책성을 자신의 것으로 짊어지는 것이다. 강도 만난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주체성은 비로소 고유성으로 환원된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 선한 사마리아인은 타버린 재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작은 죽음, 이후
그는 단독자이다. 반항하는 인간이자 누구보다도 긍정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의 고유성은 타자와 합일하는 전체성과 모순되지 않는다. 무한의 세례를 받은 주체는 단독성과 전체성을 모순 없이 끌어안는다. 표상할 수 없지만 들을 수 있는 무위의 울림은 그를 깎고 다듬는다. 절대적 타자는 시선이 아니라 잊힐 수 없는 목소리로 현현한다. 그리하여 선택받은 주체는 온전히 열리고, 다시 한번 몰락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죽음보다도 정의가 행해지지 않음을 두려워하고, 부정의를 범하기보다는 부정의의 희생자가 되기를 선택하고, 존재를 확실히 하기보다도 존재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기를 선택하는 사람의 가능성이 우리 앞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