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읽기(16)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산다
내가 생각하거나 느낄 때면, 나는 모른다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이 누군지,
나는 그저 느끼거나 생각하는
하나의 장소
나보다 먼저 나였던 타자. 그의 물러남은 웅크리며 당신을 위한 장소를 내어준다. 겹쳐진 주름 사이, 비로소 정주를 가능케 하는. 태곳적 기억은 텅 빔 사이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찾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기괴한 흔적. 끔찍한 것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나는 이미 그녀를 잊었다.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심연의 아토피아. '장소 없음'은 우리 사이, 없지 않은 물의 기억이다. 오래된 짐승의 뼈를 만지며 절대적 나를 예감하는.
(180~18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