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마늘장아찌
채소는 싱싱하고 과일은 당도가 보장되어 늘 인기가 많은 ‘기봉이 야채 과일’ 가게 앞을 지날 때였다. 누런 박스 한쪽을 쭉 찢어 ‘서산 육쪽마늘 왔어요!’라는 파란색 손 글씨가 보였다. 높이 쌓아 놓은 마늘 더미 앞에, 눈에 확 띄게 붙어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마늘의 계절은 왔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마늘 한 접을 사서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놓아뒀다. 짙은 마늘 향을 맡으며 고향을 떠올린다.
마늘은 늦가을에 심어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의 햇살을 받아 6월쯤에 수확한다. 특히 서산 육쪽마늘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마늘이다. 맛과 향기를 내는 알리신의 함량이 높고 매운맛과 달큰한 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마늘이 6~8쪽으로 고르게 들어있어서 ‘육쪽마늘’이라고 하는데, 단단해서 빻아 놨을 때 변함이 적어 일 년 내내 저장해 두고 먹기에 좋다. 서산의 마늘은 삼국시대부터 재배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이곳은 땅이 황토로 이루어져 있어 흙에 영양분이 풍부하고 물을 잘 빨아들이는 특성으로 마늘 재배가 적합한 지역이다. 게다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해양성 기후가 흙과 함께 마늘 수확량과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마늘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께서는 해마다 6월이면 시댁과 나눠 먹을 수 있도록 마늘을 넉넉하게 보내주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부터 마늘은 당연한 듯 받아먹는 음식 재료가 아니라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품목이 되었다. 양념으로 쓸건 빻아서 냉동실에 얼려 놓고 햇마늘이 나오기 전까지 사용한다. 마늘을 까다가 좀 작다 싶은 것은 따로 골라 마늘장아찌를 담그는데, 고기를 좋아하는 우리 집엔 꼭 필요한 음식이다.
깐 마늘을 병에 담고 마늘의 아린 맛을 없애기 위해 1:1 비율로 식초와 물을 부어준다. 마늘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7~10일간 놓아둔다. 1차 숙성된 마늘을 체에 밭친다. 여기서 나온 식초 물과 설탕, 간장, 소금, 매실액, 매실주를(혹은 소주 약간) 섞어 끓여서 식혀 붓는다. 보름 정도 실온에서 2차 숙성시킨다. 숙성된 장아찌는 냉장 보관을 하여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으면 2~3년이 돼도 변하지 않는 맛의 장아찌가 된다.
야채가게에서 서산 마늘을 보자마자 반가움에 무작정 사놓고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진다. 생각의 끝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다. 아버지의 거칠고 투박한 손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늘을 심고 캐고 말려서 엮으며 끊임없이 움직이시던 그 손. 그 손은 자식으로서 안쓰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게 했지만, 늘 따뜻했다. 40이 되고 50이 돼도 부모님께 위로받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생각나는 손이다. 아버지는 종종 중요한 순간에 손을 꽉 잡았다 놓는 것으로 ‘파이팅’이라는 말을 대신하셨다. 특히 그 악력을 가장 세게 느꼈던 세 번의 순간이 있었다.
<아버지의 손>
아버지의 투박한 손이
꽉 잡아 주시던 그 감촉이 무척 그리워지는 날이에요.
그 순간적인 악력은
큰 시험장에 들어가기 직전에 “넌 할 수 있어!”
결혼식장, 남편에게 손을 건네주며 “행복하게 잘 살아라.”
저 하늘 위로 소풍 떠나시던 전날에 “내 막내딸, 사랑한다”란
말씀이었고 응원이었음을
아버지! 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