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사러 온겨?
"동백(대전의 동양 백화점) 앞에서 만나" 부모님과 떨어져 대전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싶을 때 동향 친구들끼리 종종 동백에서 만났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서 시간 엄수는 필수였고 어쩌다 늦더라도 30분 정도는 서로 기다려줬다.
얼마 전 30여 년 만에 그 시절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일부러 친구들에게 대전역과 가까운 구도심에 약속 장소를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추억의 거리를 혼자 둘러봤다. 이제 '동백'이라는 이름은 대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거리 권력'의 변화 속에서 대전의 중심이 바뀐 지 오래다. 그곳은 대전정부청사를 비롯한 여러 기업체의 사옥과 백화점, 엑스포공원 등 각종 인프라가 갖춰진 신도시다. 그로 인해 구도심은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거리될 뻔했다. 하지만 거기엔 67년 전통의 '성심당'이 건재했다. 30년 전과 다른 점은 성심당 골목에 빵을 사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있다는 것. 예전엔 빵사기 위해 줄을 선 적은 없었다. 전국 각지에서 튀소(튀김 소보루빵), 부추빵, 각종 도넛, 샌드위치, 계절을 담은 케이크를 사기 위해 모여든다더니 실제로 보니 실감 났다. 대전에서 열리는 프로야구장 한화 팬들이 "빵사러 온겨?"라며 상대 응원팀을 귀엽게 놀리면 기분은 상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다 없단다. 실제 빵 봉지를 들고 있기 때문에.
'문화권력'의 흐름 속에서 인터넷이 오히려 오프라인 기반의 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문화를 이끈다. '빵지 순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전국적으로 맛있는 빵집이라면 오고 가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성심당은 대전 시민들도 대전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여기고 있는 강력한 브랜드파워를 갖고 있다. 단 한 번도 대전시 이외의 지역에는 분점이나 가맹점을 두지 않았다. 대전 시민들에겐 상당한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동백에서ㅇㅇ시에 만나"라는 말로 약속을 정하고 만날 때까지 기분 좋은 떨림으로 혹은 길이 엇갈릴 걱정으로 무작정 기다렸던 시절. 그런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울 때 한번씩 추억의 장소를 찾아 그때의 감성을 느껴보고 SNS에 기록하는 것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문화권력'으로 '거리 권력'을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