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바로 그 때야!
인생을 돌이켜볼 때, '게임의 여왕'이었던 시절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게임은 놀이다. 초등학교 시절, 숙제만 끝내면 저녁 식사 전까지 맘껏 놀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노는 것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편을 짜서 하는 게임에서는 거의 매번 내가 속한 팀이 이겼다. 나는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고 몸이 날렵했기에(그땐 그랬다^^) 모든 게임에서 유리했다. 그중 '고무줄놀이'에서의 활약은 지금 생각해 봐도 대단했다. 우리 동네 고무줄놀이는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양쪽에서 잡고 있는 친구들은 조금이라도 허들을 높이려고 팀원 중 가장 키가 큰 친구들이 맡는다.
무릎 높이에서부터 팔을 가장 높이 뻗어 올릴 때까지 상대 팀이 그 줄을 넘어야 이기는 게임이다. 처음엔 가볍게 뛰어넘다가 마지막엔 물구나무를 서서 넘는데 최상의 높이를 넘었을 때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 못 할 뿌듯함을 안겨준다. 허들의 높이는 문제가 안 됐다. 그들이 까치발하고 서면 나는 도움닫기를 해서 뛰어 물구나무를 서서 넘으면 됐다.
상대편은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편 친구들까지 "아휴, 이번엔 힘들 것 같다. 그게 되겠냐?"하는 중얼거림과 눈초리로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봤을 때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나도 그들과 같은 마음이 들면 여지없이 줄에 걸려 실패한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이건 될 것 같다. 가볍게 해 낼 수 있겠는데'라는 마음을 먹으면 없던 초능력이 생겼다. 결과는 대성공!
이때 허들은 전혀 문제가 안 됐다. 이런 순간을 심리학자 칼 융은 "내 안의 신화가 깨어나는 순간"이라고 했고, 자크 라캉은 "실재계에 눈을 뜨는 순간"이라고 명명했다. 이런 잠재적 힘은 우리 안에 늘 존재하며 발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주위 사람들은 "넌 할 수 있어. 잘 해낼 거야"라고 말해 준다. 하지만 난 신중하기가 지나쳐 한 발짝도 못 디디는 답답한 행동을 반복한다. '안 될 것 같아. 난 못해' 다른 누구보다도 스스로 잠재의식의 발현을 막아설 때가 많다. 실수하는 게 두렵고 흠 잡히지 않으려 안달복달하며 살고 있는 것. 내게 필요한 것은 '선을 긋지 않는 것'이다. '이건 되고 저건 안되고'가 아니라 이루고 싶으면 된다고 믿고 될 때까지 해보는 게 필요하다.
답답하기만 하던 내게 변화가 조금씩 일고 있다. 시작은 새벽 5시 기상, 미라클 모닝 챌린지였다. 새벽 시간은 하루를 알차게 보낼 기회를 만들어 줬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나를 성찰할 수 있었다.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어 줬다. 마음으로만 간직했던 작가라는 꿈을 공동 출판이라는 형태로 아주 살짝 맛보기도 했다. 미라클 모닝 챌린지가 마중물이 되어 넘기 힘든 그 선을 조심스럽게 밟고 걸어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뜨거웠던 올여름, 몇 번 고비를 맞이했지만, 방향성은 잃지 않았다. 잦은 긍정적 다짐은 나를 정신 차리고 걸어갈 수 있게 만든다. 경험에서 얻은 것이니 이건 내게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