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이 한마디가 현재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잃어버렸다고 생각된다면 일상의 소소한 재미부터 찾아본다. 보통 잔재미는 숨어있기 마련이다. 막상 찾으려면 보이지 않다가 의외의 순간에 찾아들기도 한다. 남편과 산책 후 마시는 커피가 한잔으로 아쉬울 만큼 맛있어지면서 걷기가 재밌었다. 딸이랑 둘만의 아지트, 미끄럼틀에 누워 밤하늘 바라보기는 어릴 때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바라봤던 그곳과 다르지 않았다. 한밤 중, 이유없이 깨서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눈을 감고 조용히 오디오 북을 듣는다. 그 시간이 주던 지독한 고독감이 책에 대한 흥미진진함으로 바뀐다.
남편과 함께하는 주말 루틴은’ 잔잔한 재미‘다. 편한 복장으로 무작정 산책을 나선다. 새로 꾸며 놓은 공원은 여러 종류 꽃과 초록색 나무들로 싱그럽다. 크게 한 바퀴를 돌면 15분이고 서너 바퀴만 돌아도 꽤 운동이 된다. 그즈음 우리 부부는 커피의 유혹에 빠진다. 카페 근처 공원 샛길에서부터 진한 커피 향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아메리카노와 햄 & 루꼴라 샌드위치를 간단한 아침 식사로 주문한다. 루꼴라와 토마토, 모짜렐라치즈가 고소한 치아바타 빵과 무척 잘 어울린다. 거기에 커피 한 모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
이 루틴은 남편을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들어 줬다. 산책하면서 나누는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이상한 건 집에 있을 때는 각자 일에 바빠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편은 스포츠 중계에 빠져 산다. 야구, 축구, 당구 등 돌아가면서 시청한다. 본방송, 뉴스, 하이라이트 꼼꼼히도 챙겨본다. 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밖에 나오면 세상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아이들 이야기, 정치, 경제, 사회, 직장 이야기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서로 먼저 말하려 끼어들기도 잦다.
이런 시간이 지속되면서 남편의 진심을 많이 알게 됐다. 내년에 결혼을 앞둔 딸에게 갖는 애틋한 마음이 엄마 못지않다는 것. 직장에서 어떤 일이 남편을 괴롭게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남편도 곧잘 알아차린다. 과하게 선을 넘은 충고로 간혹 기분을 상하게 하지만 알아주는 그 마음만은 든든하다. 주말 루틴이 지속되면서 서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축적되고 있다.
가끔 딸과 집 앞 놀이터 미끄럼틀에 나란히 누워 밤하늘 바라보는 것을 즐겨 한다. 이건 ’뜻밖의 재미‘다. 맨 처음 누워 본 날은 밤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놀이터 앞을 지날 때쯤 딸이 미끄럼틀에 누워 보자고 제안했다. 친구들과 종종 누워서 노는데 아늑하고 참 좋다고. 처음엔 누가 볼까 거부했지만, 한 번만 누워 보라는 거센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누웠다. 몸을 폭 누일 수 있는 미끄럼틀, 그곳에서 바라본 하늘엔 또렷한 별빛과 가느다란 초승달이 편안함을 더했다.
유년 시절 금세라도 별이 쏟아질 듯 반짝반짝 빛나던 밤하늘을 좋아했다. 계절별로 별자리 찾는 재미가 있었다. 미세먼지 없는 도시의 하늘에서도 몇 몇 별자리는 선명하게 보인다. 게다가 미끄럼틀이라는 소품이 나를 순수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 경험이후 미끄럼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대낮에는 무심한 듯 그곳을 지나쳐 버리지만 밤 외출을 하는 날엔 꼭 그 자리에 누워 보고 싶어진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크게 웃어젖히기도 하고 때론 속 깊은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 둘만의 재밌는 아지트를 만들었다.
두어 달 전부터 밤 2~3시경에 깨서 정신과 눈이 말똥말똥한 채 1시간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주위 친구나 지인, 갱년기를 먼저 겪은 언니는 이제 시작이라며 겁을 잔뜩 준다. 언니는 그런 증상이 시작될 때 습관이 들지 않게 하려면 뇌를 속여야 한다고 방법을 알려준다. 잠이 잘 오는 차를 마시고 잠이 안 와도 눈을 감고 자는 것처럼 해보라는 것. 건강한 수면시간이 7~8시간은 돼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충고를 받아들여 바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새벽에 깨는 시간은 일정해지고 눈만 감을 뿐 생각이 많아져서 없던 불안감이 밤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남들 다 자는 밤에 잠들지 못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때 든 생각은 ’한동안 이런 일상이 반복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눈은 감되 귀는 열어보자‘였다. 평소에도 눈의 피로감이 심해서 오디오북을 자주 듣는 편인데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주는 재미‘는 잠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줬다. 1시간 예약을 걸어놓고 듣다 보면 어쩌다 잠이 들기도 하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1시간을 더 듣기도 한다. 새벽 오디오북의 단점은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 눈의 피로감 때문에 메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뜬금없이 같은 시간대에 눈이 떠지는 두려움을 오디오북과 함께 하면서 제법 느긋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한 권 두 권 귀로 듣는 독서의 재미가 크다.
’작은 재미‘가 하나둘 모이면 일상이 평안해진다. 그것은 소소한 행복감을 준다. 소소하다고 결코 작은 행복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마음속에 걸리는 것 없이 짐을 내려놓고 맘 편히 쉴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얼마나 큰 행복인가? 정신과 전문의 이근후 선생님은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라는 책에서’ 인생의 슬픔은 작은 기쁨들로 회복된다. 작은 재미가 오래 지속되면 콘크리트 같은 재미가 된다‘고 말했다. 주말 산책 후 마시는 커피, 미끄럼틀에서 나누는 딸과의 대화, 새벽 2시 오디오북은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이외에도 작은 재미들은 많다. 작은 재미가 축적되면 각자의 세계는 튼튼해질 것이다. 그로인해 힘든 날도 더듬거리면 닿을 곳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