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 감나무에 감이 탐스럽게 열렸다. 손에 닿을 듯 말 듯 한 위치에 나뭇잎 사이로 빨간 홍시가 보였다. 담 위에 올라가면 감 몇 개는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를 담장 옆에 가져갔다. 의자를 발판으로 담 위에 올라갔다. 담이 적벽돌 한 칸밖에 안 되는 면적이라 한걸음 내딛는 게 무서웠다. 다리가 후덜덜 떨렸다. 키발을 하고 손을 뻗으면 감을 더 딸 수 있을 텐데 손에 닿는 감만 땄다. 담장 위에서 내려오려고 뒤를 도는 순간 깜짝 놀랐다. 감나무 반대편에 있는 소나무 위에 덩굴이 한아름였다. 이제껏 소나무 잎이 푸릇해서 무성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게 다 덩굴이었다. 덩굴을 걷어내니 한 무더기가 나왔다. 소나무 옆에 있는 포도나무줄기를 뱅뱅 감고 올라와 소나무 잎을 감쌓았다. 마치 제집인양. 덩굴을 걷어낸 소나무는 잎이 축축히 져져있고 바싹 마른 갈색잎들이 숙북히 쌓여있었다. 꼭 물에 빠진 생쥐 같았다. 작년에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가 심은 소나무니 소중히 잘 키우라는 말이 생각났다. 소나무가 죽게 생겼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새감 느껴졌다. 손바닥만 한 텃밭이지만 아버지는 그곳에 고추랑 감자를 심으며 잡초를 뽑았다. 올해는 잡초만 무성했다. 이 잡초들이 포도나무와 주목, 소나무를 감싸고 자기 몸을 펼쳐나갔다.
감 몇 개를 따려다 우연히 마주한 소나무의 모습이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겉으로는 푸르게만 보였던 나무가 사실은 덩굴에 휘감겨 고통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잡초와 덩굴이 나무를 조여 말라가게 만들듯, 우리 삶에도 눈에 띄지 않게 스며드는 무언가가 소중한 것을 서서히 약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정성껏 가꾸시던 작은 텃밭이 잡초에 뒤덮인 것도 그렇다. 아버지의 손길이 사라지자 잡초들이 텃밭을 차지했다.소중한 텃밭의 자리를 채우던 잡초와 덩굴처럼, 사람의 부재는 주변을 서서히 바꾸어 놓는다. 그 안에서 소나무도, 텃밭도, 어쩌면 우리 가족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감나무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단순한 마당이 아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 속에서 돌봄의 의미, 관심의 필요, 그리고 사람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 만큼 그리움이 컸다. 누군가의 손길이 있어야만 지켜지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나무와 잡초가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