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가을걷이

정읍 옹동 두거리

by 정미옥


이맘때 시골의 가을은 분주하다.

평온하고 한적한 들녘과는 달리 사람들의 손은 쉴 틈이 없다. 해가 지고, 휘영청 달빛이 들기까지 일손이 멈추지 않는다. 한 해 동안 땀 흘려 가꾼 곡식을 거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봄부터 모종해 심어놓은 깻잎과 고추를 걷어들이며, 텃밭은 또 한 번의 생명을 품는다. 봄에는 상추, 양파, 마늘을 수확하고, 그 자리에 깨와 고추가 대신 자란다. 파와 상추는 그 옆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가을이면 다시 무와 배추를 심으며, 겨울을 기다린다.


농사는 끝이 없다. 봄, 여름 내내 정성을 들였어도 가을 수확은 여전히 걱정이다. 비가 많이 오거나 태풍이 불면 벼는 쓰러지고, 배추는 밭에서 짓물러 버린다. 햇볕이 들어야 깨도 잘 마르는데, 요즘은 쨍한 햇살을 본 지 오래다. 하루 걸러 비가 내린다.


지난주 일요일, 어머니가 비가 와서 베어놓은 깻대를 비닐천으로 덮어두셨다. 며칠 뒤 비닐을 걷으니 속에서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축축한 깻대를 고랑 사이에 펼쳐놓고, 햇볕이 쨍 들기를 바랄 뿐이다. 수확을 그르치면, 한 해의 노고가 헛수고로 돌아간다.


인생도 그렇다. 살다 보면 비바람을 맞고, 태풍을 견디며 버텨야 한다. 이제는 내 삶에서도 수확의 때가 온 듯하다.


삶에서 거두는 건 무엇일까? 자식, 성취, 건강, 재산…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도, 그렇다고 허망하지도 않다. 자식은 제 길을 찾아 나섰고, 건강은 나이 들면 아픔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재산은 몸 하나 누일 자리 있고, 누군가에게 커피 한 잔 건넬 여유가 있으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가끔 마음이 흔들린다. 누군가는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 하고, 누군가는 승진 소식을 전한다. 그럴 때면 묘한 불편함이 스며든다. 아마도 내 마음의 농사가 아직 덜 익은 탓일 것이다.


햇볕이 드는 날을 기다리는 깻대처럼,내 마음도 언젠가 바짝 마르고 단단해지길 바란다.그때 비로소, 삶의 진짜 가을걷이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