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가 한 달이나 남았는데도 해는 벌써 많이 짧아졌다. 퇴근길에 나오니 초승달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붉게 저문 하늘이 하루를 조용히 접어 주는 것 같았다. 숨을 한번 고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쁘게 흘러간 하루가 그 붉은 빛 속에서 잠시 멈춘 듯했다. 이런 순간이 아니면 하루를 돌아볼 틈도 없이 또 하루가 저물어 버린다.
부장님이 완주에 가서 점심으로 김치닭볶음탕을 먹자고 하셨다. 내년이면 공로연수에 들어가신다. 공식적으로는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고 12월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으신다고 했다. 송별회는 따로 하겠지만,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점심이었다.
말없이 김치닭볶음탕을 앞에 두고 수저를 들었다. 특별한 인사는 없었지만, 묘하게 조심스러운 공기가 식당 안에 감돌았다. 누구도 크게 웃지 않았고, 누구도 길게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용히 밥을 먹었다.
하지만 오늘은 감상에 잠길 여유가 없는 날이었다. 예산 심의가 예정되어 있어 과장님과 나, 예산 담당자는 먼저 자리를 일어섰다. 내년도 지역화 교재와 관련한 질의가 있었다. 작년에 의원님이 요구했던 사항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한 해 동안의 노력과 수많은 과정이 몇 마디 질문 앞에서 다시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담당 연구사님이 자료를 다시 취합해 내일 재설명하기로 하고, 우리는 일단 원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 차창 밖으로는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의 풍경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과장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내신… 취소할 거야?”
나는 잠시 대답을 미루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으로는 쉽게 “취소하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작은 파문이 일었다. 잘한 선택인지, 어쩐 일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지금의 이 결정이 어떤 결과로 되돌아올지, 앞으로 내가 향하게 될 자리가 어디일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오늘의 선택이 오늘의 나를 지켜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가끔은 인생이 너무 먼 앞날까지를 묻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오늘의 답은 오늘까지만 유효하고, 내일의 답은 내일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오늘은 오늘대로 견디고, 사람들과 무사히 부딪히지 않고 지내고, 별일 없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을 바란다. 초승달이 다시 어둠 속으로 묻힐 때까지, 내 마음도 이 하루 안에서 조용히 접히기를 바란다. 그것이면 충분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