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짐에 대하여

by 정미옥

언제부턴가 자주 넘어진다.

처음 넘어진 날은 한겨울이었다. 눈이 내려 길바닥이 살얼음처럼 얼어붙은 날, 딸아이 빵을 사러 나섰다. 발목까지 오는 롱패딩을 끝까지 잠그고, 추운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그만 미끄러졌다. 순식간에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솟구쳤다. 그게 나의 첫 넘어짐이었을까.

그 전에도 계단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다. 몇 해 전에는 얼굴이 크게 멍들 정도로 세게 넘어진 기억도 있다. 빙판길에서 미끄러졌을 때는 얼굴이 먼저 땅에 부딪혔고, 그 이후로 치아 배열이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넘어짐은 내 삶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크게, 혹은 아주 작게, 여러 번


올봄에는 광양의 한 마을에서 냇가를 건너다 발을 헛디뎠다. 젖은 돌 위에서 신발이 미끄러지며 잠깐 몸이 기울었지만, 다행히 앞으로 고꾸라지지는 않았다. ‘이번엔 괜찮았다’고,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러다 며칠 전, 김장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종일 배추를 나르고 무거운 통을 들느라 다리에 힘이 풀렸던 것 같다. 거실 문을 열다 발을 잘못 디뎠고, 그 순간에는 피할 공간도 없었다. 식탁이며 김장 통이 가득한 좁은 틈에서 나는 그대로 넘어졌다. 왼쪽 무릎이 먼저 바닥을 찍고, 몸이 틀어지며 오른쪽 얼굴이 부딪혔다. 넘어지는 그 짧은 순간, 머릿속에는 단 한 생각뿐이었다.


‘어떡하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넘어져야 하지.’

결국 오른쪽 입술이 부르트고 새까맣게 멍이 들었다. 다행히 더 큰 부상은 없었다. 하지만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오래 서 있었다.

이제 나는 매일 주문처럼 되뇐다.


넘어지지 말자.


넘어지면, 모든 것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고관절 골절로 걷지 못하게 되고, 결국 폐렴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들어왔다. 그 이야기가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미래처럼 느껴진다. 치아가 흔들릴 때마다, 무릎이 욱신거릴 때마다, 내 몸은 나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만 같다.

“이전처럼 살지 말라고.”

그래서 요즘 나는 문턱 하나를 넘을 때도 천천히 발을 옮긴다. 계단에서는 반드시 난간을 잡는다. 급하게 걷지 않고, 주머니에서 손을 꺼낸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사소한 동작들 앞에서 나는 이제 매번 멈추어 선다. 조심하라는 신호를, 내 몸이 먼저 보내기 때문이다.

넘어지지 말자.

그 다짐은 더 이상 겁이 아니라, 살아 있음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예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