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다섯째 작은아버지의 팔순잔치가 있었다. 며칠 전 사촌동생이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며 건물 사진까지 보내주었는데, 나는 몇 해 전 생신을 했던 장소와 이번 장소를 그만 혼동하고 말았다. 머릿속에서 서로 다른 두 공간을 하나로 겹쳐 놓고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기억을 믿는다는 건 이렇게 허술할 때가 있다.
추석에 고구마전을 부치며 고구마를 썰다가 오른쪽 어깨에 무리가 갔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통증은 조금씩 올라왔다. 금요일 저녁부터 팔이 잘 올라가지 않더니, 토요일 아침에는 마치 어깨가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팔을 들어 올리려다 멈추는 순간, 몸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동생에게 같이 가자고 할까, 버스를 탈까 고민하다가 거리가 멀지 않다고 생각해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걷다 보니 어깨뿐 아니라 다리까지 묵직하게 아파왔다. 결국 근처 약국에 들러 바르는 파스와 약을 샀다. 그 사이 사촌동생에게 전화가 와서 잘 오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파서 운전을 못 하고 걸어가고 있다고, 거의 다 왔다고 말했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사진과 전혀 다른 건물이었다. 그제야 내가 장소를 잘못 알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실제 장소는 중화산동 쪽이었고, 택시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안도감과 함께 확인하지 않은 내 판단이 부끄러웠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은 것들이 늘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식당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작은아버지들과 작은어머니들, 그리고 작은 엄마네 처갓집 식구들까지 함께였다. 왁자지껄한 웃음 속에서 사촌동생이 유난히 대견해 보였다. 어릴 적 제일 개구쟁이였고, 밥은 잘 먹지 않으면서 고추장만 찾던 아이였다. 공부도 뒷전이라 어른들이 걱정하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 길을 묵묵히 걸으며 가정을 이끌고 부모님을 챙기는 든든한 가장이 되어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사람을 키워 놓는다.
그 모습을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이런 자리에 함께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살아계실 때 더 잘해 드리지 못한 시간들이 마음에 남아 조용히 죄송스러웠다.
가족은 힘이라는 말을 다시 느꼈다. 각자 멀리 흩어져 살아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지만, 그렇게 모여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혼자 사는 인생 같아 허전할 때, 가족은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조용히 일깨워 준다. 그 짧은 만남이 삶을 다시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동생이 같은 동네에 사는 막내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그리고 나를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올 때는 혼자 걸었지만, 갈 때는 함께였다. 그 사실이 괜히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집에 와서 약국에서 산 파스를 다시 발랐다. 월요일에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볼 생각이다. 혹시 파열된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오늘 아침에는 어제보다 팔이 훨씬 올라갔다.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아마 근육이 놀라거나 뭉친 것일 것이다. 오늘 하루 더 조심히 써 보려 한다.
어디 한 군데 아파 보아야 몸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제는, 몸뿐 아니라 마음도 함께 돌아본 하루였다.
익숙하다고 믿은 기억은 나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다 놓았고, 멀리 흩어져 살던 가족들은 한자리에 모여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가장 가까이 있어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멀쩡히 움직이던 몸과 건강, 그리고 늘 곁에 있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던 가족이 어느 한순간 흔들릴 때
그것들이야말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며
내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힘든 날들이 이어져도,
마음속에 조바심과 걱정이 다시 고개를 들어도,
가족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힘이난다.
당연했던 것들의 온기가 내 마음의 살얼음을 조용히 녹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