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자 인사 발령에 따른 이임식이 있던 날.
송별회는 전북대학교 근처 ‘덕진헌’에서 열렸다. 같은 팀 선생님 차를 타고 다녀왔고, 식사가 끝난 뒤 차 문을 닫는 순간 문득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맑고 부드러운 날씨였다.
“날이 좋아서 걸어가면 좋겠네.”
말이 나오자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다른 팀 몇 명이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여기서 내리겠다고 했다. 잠시 차 안이 조용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공기는 그냥 스쳐 보내기엔 아까웠다.
마침 근처에 남편의 근무처가 있었다. 얼굴도 잠깐 보고, 학교를 가로질러 걸어볼 생각이었다. 전화를 몇 번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혼자 걷기에도 충분히 좋은 날이었다.
덕진공원 쪽 농대 입구를 지나 캠퍼스로 들어섰다. 나뭇잎 사이로 둥글게 매달린 플라타너스 열매가 보였다. 탁구공처럼 동그란 열매들이 마른 잎 사이에서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보는 순간, 오래전의 시간이 가볍게 흔들렸다.
학교 안의 공기는 확실히 달랐다. 건물은 많이 바뀌었고, 지나가는 학생들의 얼굴은 풋풋했다. 직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긴장과 피로로 굳은 얼굴들과는 달랐다. 그 싱그러움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런 곳에서 근무하면 좋겠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면 또다시 고생일 테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다시 살아보고 싶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붙들어 보고 싶다. 그 시절의 설렘은 고단함과 함께였지만, 분명 빛이 있었다.
신정문을 나서며 시계를 보니 20분이 남아 있었다. 걸어서는 어려울 것 같아 잠시 고민하다 택시를 탔다. 금방 도착했다. 함께 왔던 분들보다 오히려 일찍 도착했다. 그분들은 오는 길에 커피도 마셨다고 했다. 순간 ‘커피라도 사드릴 걸’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오늘은 카드를 두고 나왔다. 택시비는 휴대폰으로 바로 이체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작은 실수쯤은 기술이 덮어준다.
근무처 주변을 벗어나 잠시 다른 공간을 걸었을 뿐인데, 마치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공기가 다르고, 사람의 표정이 다르고, 마음의 결이 달라진다.
잠깐 내렸을 뿐인데, 나는 스무 살을 다녀왔다.
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 한편은 아직도 그 캠퍼스의 바람 속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