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서 벗어나기 Prologue
시대가 바뀌었다. 적지 않은 근대주의자들이 시대는 바뀌었지만 본질은 바뀐 것이 없다고 항변한다. 동의한다. 본질은 잘 바뀌지도 않으며, 의도적으로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인류가 인류로서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즈음,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였을 것이다. 인간을 동물로부터 분리해 떨어져 나올 수 있게 한 매우 특별한 능력인 관계... 사실 애초에 관계는 특별한 능력 따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우월한 힘에 대항하기 위한 열등함의 연대가 바로 관계이다. 관계의 결과는 위대하지만, 관계를 필요로 하는 개개인은 사실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역으로 관계는 개개인이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낄 때 해체된다.
생산력의 발전, 그리고 잉여생산물의 차지를 중심으로 인간의 관계는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한다. 잉여생산물은 마치 관계를 통해 인간이 동물을 분리시켰던 것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로 분리시켰다. 그리고 인류는 역사의 대부분을 계급 사회 속에서, 계급의 유전자를 키우며 살아왔다. 제도적 착취든 문화적 억압이든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계급은 여전히 인류 관계의 본질일 것이다. 내가 근대주의자를 규정하기 위해 수고롭게 이 글을 쓰는 이유가 결단코 그 본질을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사실 나는 잉여생산물의 분배가 계급을 발생시켰다는 전통적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급의 분화가 생산력의 발전을 촉진시켜 잉여생산물을 발생시켰을 가능성에 대해 무게를 두는 입장이다. 마르크스는 계급의 관점에서 인류를 통찰했지만, 나는 관계를 통해 힘을 갖게 된 인류가 그 힘의 확장인 개체수의 확대에 따른 생산력의 필요가 계급을 발생시켰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입장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보다 근거를 가지고 제시하도록 하겠다. 아직은 그저 입장일 뿐이니 너무들 괘념치 마시라...
제도적 계급은 적어도 근대화의 과정에서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근대 이후의 모든 제도는 형식적으로는 ‘만인의 평등’을 주장한다. 문제는 여전히 인류의 상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 문화적 계급이다. 인류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적 계급이 인종과 성별, 그리고 종교라면, 국가 내에 존재하는 문화적 계급은 부의 분배 결과와 나이에 따라 존재하는 세대 정도로 볼 수 있다. 지구 상의 어떠한 근대적 제도도 인종, 성별, 종교, 재산, 나이의 차이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거나 억압해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 관계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아직 제도로 합의되지 않은 문화적 계급이다.
근대적 관점에서 불평등한 계급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르크스가 엥겔스와 함께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천명했듯 ‘투쟁을 통한 혁명’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이 제도적, 문화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피지배계급만 알고 있는 비공개 행동 강령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전달해 준 불도, 그리고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통찰한 자본론도 근대를 거치며 피지배 계급의 지배 계급을 향한 저항의 무기인 동시에 지배 계급에게는 지배를 위한 억압의 망치가 되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자들이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수의 추종자들만 그의 예측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의 글을 읽었다. 하지만 그 사회주의 선동가들이 지지세력을 갖게 되고 힘을 얻자 자본주의자들은 초긴장했다. 그래서 그들도 《자본론》을 정독했고,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도구와 통찰을 여럿 차용했다. 20세기에는 거리의 부랑자들부터 대통령까지 모든 사람이 경제학과 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방식을 포용했다. 심지어 마르크스가 전망한 예후에 거세게 반발한 골수 자본주의자들조차 마르크스의 진단을 가져다 썼다. CIA는 1960년대에 베트남과 칠레의 정세를 분석하면서 사회를 계급으로 나누었다. 닉슨과 대처도 세계를 검토하면서 중요한 생산수단을 누가 통제하는지 자문했다. 조지 부시는 1989년부터 1991년까지 공산주의라는 악의 제국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1992년 선거에서 빌 클린턴에게 패하고 말았다. 클린턴에게 승리를 안겨준 선거전략은 하나의 모토로 요약된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마르크스도 이보다 나은 말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역사 지식의 역설이다.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행동을 바꾼 지식도 곧 용도 폐기된다. 우리가 데이터를 더 많이 보유할수록, 역사를 더 잘 이해할수록 역사는 그 경로를 빠르게 변경하고, 우리의 지식은 더 빨리 낡은 것이 된다.”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중에서)
진보적 정치학자로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국회의원을 하기도 했던 故장을병 교수는 1993년 즈음 강의실에서 김영삼 정권에 대응하는 학생운동권에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나도 후배로부터 들은 얘기라 정확한 출처를 밝히기는 어렵다.
“지금까지의 군부정권이 고정 타깃이었다면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권은 무빙 타깃이다. 타깃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학생운동권은 과거 군부독재와 투쟁하는 방식으로 김영삼 정권과 싸우고 있다.”
1990년 노태우, 김종필, 김영삼의 야합을 통해 탄생한 민자당, 민자당의 대선 후보로 대통령이 된 김영삼 정권의 본질은 전두환, 노태우의 군부 정권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나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한때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학생운동은 그 변하지 않은 본질의 대상인 김영삼 정권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1996년 연대 항쟁을 끝으로 점차 그 힘을 잃어간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무지를 인정한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칭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의심하지 않고 아메리카를 아시아, 그중에서도 인도라고 확신했다. 만약 콜럼버스가 자신이 대서양을 횡단해 다다른 대륙이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의 맵 밖에 있는 새로운 대륙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만 했어도 현재 아메리카는 북 콜럼버스와 남 콜럼버스로 불려졌을지도 모른다. 최초의 근대인인 아메리코 베스푸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의심했다. 근대를 겪은 우리는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의심하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근대를 넘어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무엇을 의심해야 할까?
지구를 지배했던 것은 애초에 자연이었다.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관계를 통해 ‘이성’을 갖게 되리라고는 지구도 몰랐을 것이다. 관계를 통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관계의 밀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동물적 본성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이성이 생겨났고, 나아가 인지 혁명을 통해 분절적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자연을 관찰한 결과를 언어와 문자를 통해 후대에 전달했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었던 자연의 규칙을 이해하게 되면서 지구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자신이 이 땅의 지배자라며 오만에 빠진 인간을 통제한 것은 다름 아닌 신이었다. 소위 암흑의 터널이라고 불리는 중세에 진입한 것이다. 신의 권위는 역설적으로 십자군 전쟁을 통해 동방의 문물이 서방으로 연결되면서 도시국가의 발달 - 르네상스 - 종교개혁을 거치며 인간에게 부정당한다. 드디어 인간은 신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지구의 지배권을 되찾았으며, 한 철학자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인간은 절대 이성을 추구하며 신에 다가가고자 했다. 절대 이성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꿈의 해석’을 통해 인간의 동물적 욕구를 재조명한 프로이트였다. 절대 이성을 추구한 결과는 처참했다. 인간의 절대 이성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인종학살을 자행하며 인간을 동물보다 더 파괴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만들었다. 인간은 근대의 절대 이성을 부정하게 되었고, 그렇게 인류는 포스트모던 사회로 진입했다.
포스트모던, 즉 절대 이성을 추구했던 근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징을 탈영웅주의, 절대성의 해체, 개인의 등장, 불확실성의 가중, 당위의 역설, 가치의 상대성과 융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저명한 누군가의 주장을 뒤섞어 표절한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반하는 근대 사회의 특징은 아마도 영웅주의, 절대 이성의 추구,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 과학을 통한 불확실성의 증명, 절대적 가치를 통한 선악구도 등일 것이다. 마치 무빙 타깃인 김영삼 정권에 대응하지 못해 몰락의 길을 걸었던 학생운동처럼, 근대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진보주의자들을 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근대주의자라고 칭할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던 콜럼버스처럼, 자신의 신념을 의심하지 않는 근대주의자들은 훗날 역사의 조롱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다음의 열 가지 중 다섯 가지 이상 근대주의자에 해당되는 사람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근대주의자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본질은 문화적 외피인 미디어를 뒤집어썼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본질은 미디어를 통해 가공되고, 다양한 미디어의 세례를 받아 온 개개인은 자신의 관점에서 가공된 본질인 미디어를 해석한다. 어떠한 영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본질만을 주장한다면? 그 영웅은 대중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난 광화문 촛불혁명을 통해 직접 목도한 그대로다. 천만의 촛불 중 누가 본질이고, 어떤 영웅이 그들을 대변할 수 있단 말인가!
제도화된 계급을 부정하고 혁명을 통해 중세를 몰락시켰던 부르주아지들은 근대를 열었던 진보주의자들이었다. 그런 부르주아지가 자본주의가 시작된 근대에도 여전히 진보주의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절대적인 진리와 가치를 추구했던 근대주의자들은 중세에는 진보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마치 부르주아지가 자본주의가 점령한 근대의 보수세력이 된 것과 다르지 않은 논리로 근대주의자들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여전히 근대의 가치를 부여잡고 있는 보수주의자일지 모른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 근대인이 되었듯, 근대주의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이 마치 종교처럼 신봉하고 있는 신념이나 가치가 상대적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천사나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생각이 다를 뿐이다. 다음은 한국 무협만화의 전설 열혈강호(전극진 글, 양재현 그림) 5권에 나오는 장면이다.
한국의 근대주의자들이 만화를 좋아하지 않아서일까? 문화콘텐츠의 하나인 만화에서조차 상식이 된 가치의 상대성을 근대주의자들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