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백수 채희태 Sep 12. 2019

종교의 신념화와 신념의 종교화

종교의 신념화와 신념의 종교화

1. 序

인류 역사를 통틀어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일까? 단 한 명을 꼽아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단연 예수를 꼽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를 더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맑스를 꼽을 것이다. 예수가 ‘종교’적으로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면, 맑스는 사회주의가 몰락한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신념’으로 남아 현대철학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과 기원후가 나뉠 정도니 후대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를 유일신의 독생자이자 삼위일체론에 따라 그 자신이 스스로 신 자체인 종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 예수의 모습으로 들여다보면 맑스와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려 2천여 년 전에 태어난 인간 예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인류의 과학 문명이 지구를 떠나 우주로 향하고 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 것일까? 인간 예수에 대해 알아보려면 먼저 종교의 발생과 진화 과정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종교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원시 인류는 자신의 사고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자연의 모든 규칙에 신적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계급사회로 접어들면서 종교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했고, 지배계급은 자신의 지배 논리를 확대, 강화하는 과정에서 종교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의 발달이라는 문명의 성취를 이루었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해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을 지배할 수 있는 물리력을 확보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배 계급의 의도와 무관하게 피지배 계급의 사회적 인식 또한 성장했다. 물리적 지배는 가능했겠지만, 동시에 정신적 지배가 가능하기 위한 장치 또한 끊임없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신화가 등장했고, 종교는 갈수록 정교해졌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인간적이며 심지어 찌질하기까지 하다.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며, 질투나 복수는 신들의 일상이다. 아마도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의 모습 속에는 그 당시 지배 계급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도덕성을 문제 삼지만, 그 당시에는 신이나 지배 계급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 숭배나 지배를 거부할 피지배 계급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이 그들의 수준에 맞는 대통령을 가지듯, 신의 모습 또한 그 시대 대중들의 보편적 인식을 반영한다.


구약에 등장하는 유대의 신 또한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보다 크게 ‘신격적’으로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구약에 등장하는 유대의 신은 인간처럼 분노하고 질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다. 매우 중요한 차이점은 자연에 존재하는 특정 대상에 국한된 신이 아니라 그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유일신이라는 것? 신화가 지배 계급의 지배를 위한 정신적 자산으로써 그 쓸모를 다 했을 때, 그리고 유대의 신이 가지고 있는 오만함과 편협함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정확한 실체 없이 막연한 상태로 인류의 정신세계에 축적되고 있을 때, 예수가 등장했다. 예수가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계급과 종교가 향하고 있던 관성이 아니라, 그 관성 속에서 성장해 왔으나 실체가 분명하지 않았던 인류의 보편적 상상에 수렴하는 가치였다. 그래서 그 시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피지배 계급은 예수에게 열광했고, 예수의 말과 행동은 마치 불치병을 치료하듯 명쾌하게 보였을 것이다.


예수는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던 시대적 요구를 정확히 꿰뚫어 본 통찰자였다. 예수의 통찰력은 일개 유목민족의 편협한 종교였던 유대교와 결합하여 기독교를 전 세계인의 종교로 만들었다. 물론 기독교가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된 데에는 모든 세계로 통하는 길을 개척한 로마제국의 공 또한 만만치 않다.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동안 탄압해 오던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인정했다. 그 결과 인류는 역사상 가장 길고 어두운 암흑기인 중세의 터널로 진입하게 되었고, 현재 기독교라는 종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신념’이 되었다.


2. 本

시대의 통찰자라는 관점에서 보면 맑스도 예수에 뒤지지 않는다. 예수가 태어난 뒤 1818년 후에 태어난 맑스는 자본주의의 천박한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본 철학자였다. 자본주의는 십자군 전쟁 과정에서 동방에서 약탈해 온 다양한 문물들의 거래를 통해 성장한 시민 계급이 절대왕정의 폭정에 대한 기층 민중의 분노를 이용해 브르주아 혁명에 성공하면서 비롯되었다. 18세기 전후 서구에서 진행되었던 시민혁명은 지금 생각해 보면 ‘상인’ 혁명이고 ‘상업’ 혁명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상인의 천박한 철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기억하는가?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의 살을 베어 내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자본주의 이전 피지배 계급의 삶 또한 폭폭하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계급은 세련되게 은폐되고 비인격적 자본의 논리가 인간을 지배한다.


맑스는 19세기 초기 자본주의를 보며 두 가지를 통찰했다. 첫째, 장차 천박한 자본의 논리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사실과 둘째, 자본주의는 인간의 물질문명을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속도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는 자본주의의 부정적 쓸모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만이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쓸모이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물질문명의 발달이 인류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될 것이며,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문명의 결과가 자본이 아닌 인간을 위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계급투쟁’이다.

근대의 위대한 통찰자, 칼 맑스 (Karl Heinrich Marx, 1818~1883)

하지만 19세기 초, 자본주의의 이러한 양가적인 쓸모를 통찰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리하여 엥겔스는 맑스의 위대한 철학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맑스의 사상을 ‘도식화’한다. 지배자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성경을 독점하면서 타락했던 중세 교회의 폐단을 막기 위해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지만, 그 결과 성경의 자의적 해석이 확대되어 기독교의 다양한 분파가 생겨난 것과는 반대로, 엥겔스의 맑스주의 도식화는 맑스가 통찰한 자본주의의 양가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정한 채 모든 것을 ‘계급투쟁’으로만 인식하는 수없이 많은 교조주의자들을 양산해 냈다.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감수하면서 인간에게 불을 건네주었듯이 맑스는 자본주의 속에서 고통받을 인류를 위해 그동안 인류가 성취해  모든 경험과 지적 자산에 자신의 통찰력을 더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불을 인류에게 남긴다. 맑스는 심지어 역사 발전의 과학적인 논리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반대편에서 당시 관념 철학을 대표하고 있던 헤겔의 논리인 ‘변증법까지도 참조한다. 맑스 자신은 인류가 축적해  모든 지적 자산의 결과를 편견 없이 참조해 역사 발전의 단계와 원리를 밝혀 냈지만, 맑스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후대들은 역설적이게도  과정은 참조하지 않은  ‘계급투쟁이라는 결과에 갇히는 도착적 결과에 빠져 있다. 당시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했던 독일이 아닌 자본주의 후진국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러시아 혁명을 “자본론을 거역한 혁명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 그리고 북한을 비롯한 제3세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은 모두 맑스주의를 창조적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자본론은 맑스가 초기 자본주의를 보며 느낀 비인간적인 자본의 속성과 자본주의가 만들어 갈  인류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통찰의 결과이지, 미래를 예견하고 결정한 예언서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맑스의 교조주의자들은 마치 자본론을 성경처럼 숭배했고, 그 생각에 교조적으로 갇혀 맑스주의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유한의 영역에 가두어 두고 독점했다. 레닌과 마오, 그리고 호치민과 김일성은 모두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그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민중의 모습을 보며 그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실천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책상머리에 앉아 한가하게 맑스주의 철학에 맞게 현실을 재단하고, 뜯어 맞출 궁리를 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써 맑스주의를 받아들이고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재해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편협한 생각에 반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본 많은 맑스의 교조주의자들은 자신이 믿고 따르는 맑스주의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학문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맑스주의를 현실과 대중으로부터 완벽하게 분리시켜 자신들의 교조적 이론 체계 안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현실의 문제를 조망하고,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학문의 쓸모는 현실 세계와 더 멀어져 학문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되었고, 감히 예수의 통찰에 비견할 수 있는 맑스의 신념 또한 교조주의자들에 의해 종교화되었다. 맑스가 그토록 우려했던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물질문명의 발전을 등에 엎고 미디어라는 무기를 통해 현실과 대중 사이에 더 깊이 침투하는 사이에….


인류의 현 조상인 사피엔스가 20만 년 전에 지구에 등장하여 짧은 시간 안에 지구 생태계의 꼭대기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인간 특유의 관계 능력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크기에 날카로운 발톱도 장착하지 않은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자신보다 몸집도 크고, 힘도 세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동물들을 상대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집단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관계 능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분절적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생존을 위해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는 필연이 우연이라는 진화 과정을 만난 결과이지, 아무 맥락 없이 언어를 사용하게 되어 관계 능력을 키워 온 것이 아니다. 그렇게 관계 능력을 중심으로 진화해 온 인간이 맑스가 주장하는 역사발전의 단계를 거치며 성장해 왔는데,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러 인간의 모든 관계는 자본에 의해 상품화되고, 소비로 대체되어 자본주의라는 경제 토대 위에서 오로지 경쟁을 통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완벽한 상부구조를 완성하게 되었다.


3. 小結

대한민국이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지난 2002년,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압사당한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하기 위해 시작된 촛불집회가 이제는 대한민국 시위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심지어 지난 2005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려고 했던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를 위해 촛불을 들었을 정도니, 대한민국에서 촛불은 좌우를 떠나 자신의 생각을 평화적으로 주장하기 위한 대표 수단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시작되어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독재 시절, 대한민국의 시위를 대표하는 수단은 ‘촛불’이 아닌 ‘화염병’이었다. 그때는 최소한의 민주적인 요구를 하기 위해 화염병 정도는 들어줘야 했다. 국가 권력은 총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1993년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위대의 화염병 사용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1996년 학생운동의 몰락으로 이어진 연세대 사태 이후 화염병은 저항이 아닌 폭력 시위의 상징이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염병과 현재 시위 문화를 대표하는 촛불을 단순하게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이분법적 상징으로 나눌 수는 없다. 화염병은 모든 사람이 던질 수 없지만, 촛불은 모든 사람이 들 수 있다. 화염병은 시대의 분노를 대리해 청년학생들이 던졌지만, 촛불은 시대의 분노에 공감하는 어른과 아이, 여성과 남성, 즉 모든 시민들이 들고 나온다. 2008년 소위 광우병 촛불 때 유모차 부대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손에 화염병이 아닌 촛불을 들었기 때문이다. 시위라는 영역에서 물리력이라는 ‘전문성’이 해체되면서 오히려 시위가 추구하고 있는 본질인 대중성이 확보된 것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결과와 무관한 ‘저항의 표현’ 일 수도 있고, 특정 가치에 대한 ‘공감대의 확대’ 일 수도 있는 시위를 바라보는 견해는 다양할 수 있지만….

21세기 신자유주의는 관성과 도착(倒錯)의 시대이다. 종교는 신념으로 도착되고, 신념은 종교로 도착된다. 인간이 모든 착취와 모순에서 해방되기를 바랐던 맑스의 신념은 원리론적 교조주의자들의 관성에 의해 생전에 맑스가 아편이라고 비판했던 종교가 되었고, 민중으로부터 멀어지는 도착적 결과를 낳았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관성은 늘 자신을 착취하는 부자들에게 투표하는 도착적 결정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근, 현대사를 지배해 왔던 보수의 극단에 이르는 관성은 결과적으로 2016년 촛불정국을 낳았다. 관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강한 목적 의식성은 늘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도착적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필자는 이론과 학문에 현실을 꿰어 맞추는 원리주의자가 되느니, 차라리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해 이론과 학문을 참조하는 개량주의자가 될 생각이다.


“현실은 열정이 난무한 주관이고, 학문은 영혼을 상실한 객관이다.”(@back2analog)


매거진의 이전글 유물론에서 벗어나기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