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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Sep 12. 2019

동서양의 편견에서 벗어나기

인류 문명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인류의 초기 문명은 오리엔트에서 시작되었다. 강 유역을 따라 발달한 기름진 평야가 세계 4대 문명의 지리적 배경이었다는 사실은 대략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상식이다. 그 빈약한 풍요가, 생존의 문제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었던 병아리 눈물만큼의 여지가 문명을 여는 창조적 열쇠가 되었다. 지리적 독립성과 교통수단의 한계로 인해 문명과 문명이 서로 충돌해 주도권을 다투는 헤게모니가 성립되지 않았던 약 5천여 년의 역사...

오리엔트의 여유가 문명을 열었다면, 여러 민족이 좁은 지역에서 오밀조밀하게 살아온 옥시덴트의 ‘긴장감’은 장차(?)... 문명을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동력이 된다. 창조의 과정은 헤게모니와 무관하지만, 확산의 과정은 지극히 헤게모니적일 수밖에 없다. 헤게모니적 확산의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문명의 확산이 시작된 근원, 즉 그 뿌리였을 것이다. 옥시덴트는 문명 확산에 절대적으로 기여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명의 근원과 그 역사를 힘으로 조작한다. 그래서 지극히 옥시덴트적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기틀을 다지고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전역의 문화에 큰 영향을 준 풍부한 문화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위기백과. '고대 그리스' (https://ko.wikipedia.org/wiki/고대_그리스)에서 인용)." 그래서 우리는 '문명은 예수 탄생을 전후해 옥시덴트의 끝자락이자 오리엔트와의 경계지점인 그리스 언저리에서 시작되었고,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던 신대륙은 옥시덴트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편견에 매우 익숙하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드는 궁금증... 그래서 예수님은 동양인일까, 서양인일까?

리처드 니브 전 맨체스터대학 교수가 복원한 예수님 얼굴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평론가인 '애드워드 사이드'는 명저 '오리엔탈리즘'에서 제국주의에 근거한 서양 위주의 사고방식을 비판하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고대 그리스의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애드워드 사이드는 매우 논리적으로 주장한다. 나아가 나는 '오리엔트'라는 다소 추상적인 단어로 동양을 표현하는 것 또한 구체적으로 아랍이나, 이집트 등을 적시하는 것이 옥시덴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다소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본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첫째, 현재 우리가 한껏 누리고 있는 인류의 문명은 오리엔트의 '창조적 여유'로 인해 시작되었고, 옥시덴트 특유의 '경쟁적 긴장'으로 인해 확산된 결과이다.
둘째, 문명 확산 과정에서 옥시덴트의 헤게모니적 사고가 문명의 시작을 조작하였으며, 나아가 인간관계에 반하는 헤게모니적 사고방식이 근대 인류에게 유전적으로 전이되었다.
셋째, 당면하고 있는 다양한 포스트모던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조작된 편견과 헤게모니적 사고에서 벗어나 오리엔트의 '여유'와 옥시덴트의 '긴장감'을 보다 목적의식적으로 융합할 필요가 있다.


하여...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유전자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자리 잡고 있는 헤게모니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말이, 그리고 행동이 관계에 반하는 결과로 이어져 이 사회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늘 '의심'하고, '주저'할 필요가 있다.

영웅이 사라진, 그래서 모두가 영웅이 되어버린 포스트모던 시대에 영웅에 빙의된 강한 주장은 늘 역설적 결과로 이어진다. 한치의 주저함도, 의심도 하지 않았던 주관적 당위가 이명박근혜 정권의 창출에 기여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을 자살로 내몰았다. 박근혜를 통해 박정희의 향수를 재현하고자 했던 반역사적 선택은 국정농단으로 인한 정권 파면으로 이어져 600년을 넘게 이어져 내려온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신념화된 가치에 대한 확신은 역설적 결과를 부르는 독이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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