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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29. 2019

머리로 부르는 민중가요, '류형수'의 "선언1, 2"

민중가요 이야기 #12

지난 글, "민중가요의 황금기를 이끈 김호철과 윤민석"에서 김호철의 노래는 배로, 윤민석의 노래는 가슴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오늘 소개하는 '류형수'의 노래는 배도 아니고, 가슴도 아닌 머리로 부르는 민중가요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민중가요 음반(테이프?)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은 (미안하지만) '노찾사'도, '꽃다지'도, 그리고 '조국과 청춘'의 음반도 아닌 노래모임 '새벽'이 1988년 6・10 민주화 항쟁 1주기를 맞아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공연한 실황을 담은 "저 평등에 땅에"라고 생각한다. 공연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 나도 노래 테이프로만 들었다. 공연은 1919년 3・1 만세운동부터 1987년 6・10 민주화 항쟁에 이은 7, 8월 노동자 대투쟁까지의 대서사를 담았다. 공연의 전체 구성과 편곡, 연주, 노래 등 그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1993년 재발매된 노래모임 '새벽'의 "저 평등의 땅에"... 음질 열화가 걱정되어 디지털로 카피해 두었다.

다음은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온 노래모임 '새벽'과 공연, '저 평등에 땅에"에 대한 설명이다.

1984년에 결성된 ‘민중문화운동협의회’(민문협)는 1987년 초 ‘민중문화운동연합’(민문연)으로 발전을 합니다. 결속력과 활동이 엄청나게 고양되고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였습니다. 민문협의 노래분과였던 새벽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조직적 발전에 따라 많은 창작곡과 공연, 음반 제작 등을 이루어 내고, 그 시기 노래운동을 이끌어 갔습니다.
1988년 ‘제2회 민중문화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6월 민주항쟁 1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종합공연인 [저 평등의 땅에]를 기획하고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발표하였습니다. 이 공연은 일회적 공연으로 끝난 게 아니라 몇 차례 순회공연을 하였는데, 88년 12월에는 ‘악법철폐 기금마련 공연’으로, 89년 3월에는 ‘민주언론 실천 특별공연’ 등으로 올려지기도 했습니다.
단순 노래공연이 아니라 집체극의 형식으로 노래와 독백, 대화, 효과음, 다큐멘터리, 슬라이드가 결합된 총체적인 노래극으로 엮어졌습니다. 내용적으로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1부 ‘사랑하는 조국’, 전태일 분신자살 이후 노동자 투쟁을 그린 2부 ‘투쟁의 물결’, 민주화된 세상, 통일과 해방의 세상에 대한 전망을 담은 3부 ‘저 평등의 땅에’ 이렇게 모두 3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선언 1>, <선언 2> <노동자의 노래>, <저 평등의 땅에>,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유월의 노래>, <오월의 노래 3>, <연대의 노래> 등이 새로 창작되었는데,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듯 노동자 정서와 노동자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은 노래들을 대거 발표했습니다. 이는 과거 새벽이 지식인의 입장에서 노동자나 민중의 삶을 연민적 시각으로 그렸던 것에 비해, 노동자의 관점으로 노동자의 희망과 정서를 그려냈다는 점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URL : http://www.kdemo.or.kr/blog/song/post/761)

류형수는 이번에 소개할 "선언 1, 2" 외에도 "저 평등의 땅에", "철의 기지" 등을 작곡했는데, 곡의 구성이나 코드 진행이 모두 보편적 틀을 벗어나 있으면서도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그래서 내가 '류형수'의 노래를 '김호철'이나 '윤민석'의 노래와 다르게 가슴도, 배도 아닌 머리로 불러야 한다고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선언1"의 악보, "선언2"와 다르게 작곡가 표시가 없다. '류형수'가 아닌 다른 사람의 곡일지도 모른다.
다시 불러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노래, "선언2"

6・10 민주화 항쟁을 통해 신군부의 형식적인 항복 선언(직선제 개헌을 수용한 노태우의 6・29 선언)을 받아낸 민주진영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군부독재가 만든 세상을 무너뜨리고 그 폐허 위에 '찬란한 참인간의 세상(선언1)'을 건설하고 '우리의 후손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그동안 흘려왔던 한 방울, 한 방울의 피가 아름다운 꽃으로 피리라(선언2)'는 희망과 바람을 노래에 담았다. 진심으로 그때는 그랬다. 훗날 자식들이 반독재・민주화에 관한 역사를 배울 때 아버지는 그 시대에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역사의 현장 한가운데 있었노라고 대답하기 위해 단 하루도 투쟁의 현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뻐뜨, 그러나... 앞서 '후손들은 1도 관심 없는 애국의 길'에서도 밝혔듯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꿈꾸었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와 평화 대신에 '경쟁'을 물려받았다. 우리가 민주와 반민주가 대결하는 시대를 살았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적도 보이지 않는, 아니 보이는 모두를 적으로 규정해야 하는 무한 경쟁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발뺌을 하기엔 그 결과가 너무나 처참하다. 그래서 난 미안하다.


내가 인간이라서 자연에게 미안하다
내가 남성이라서 여성에게 미안하다
내가 어른이라서 아이에게 미안하다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에게 말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 무명씨, 宥恕 중 "미안하다 1" (https://brunch.co.kr/@back2analog/89) -


개인적으로 선언1, 2와 연관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대학 졸업 후 '민미협(민족미술협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던 선배가 1990년에 결혼을 하는데, 내가 대표를 맡았던 노래패 '꼴굿떼'에게 결혼식 축가로 "선언1, 2"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결혼식 축가로 그런 노래를 불러도 될까?" 걱정을 했는데, 결혼식을 마치고 난 후 피로연에서 그 선배의 시어머니는 자식과 며느리의 친구들 앞에서 팔을 걷어 부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시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그때 결혼식 비디오 테잎이 있다면 다시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백견(見)이 불여일문(聞)! 노래를 들어보자. 다행히 유튜브에 노래가 있다. 선언 1+2 메들리... 노래를 들어보니 위에 언급한 노래모임 '새벽'의 공연 실황에 누군가 영상을 얹었다.


https://youtu.be/kQhFXyHBk40

'들국화'가 대중가요의 수준을 10년 앞당겼다면, 노래모임 '새벽'의 민중가요는 이미 전성기의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관심이 있다면 '류형수'의 다른 노래, "저 평등의 땅에"와 "철의 기지"도 들어보기를 권한다. 모두 대단한 유튜브에서 찾아 들을 수 있다. 노래모임 '새벽'과 작곡가 '류형수'와 관련한 얘기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지만, 가급적 글을 짧게 마무리하기 위해 이번 글에서는 여기까지만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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