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 이야기 #8
대한민국 대표 민중가요를 꼽으라면 단연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닐까? “임을 위한 행진곡”은 투쟁가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으로 불러도 코 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을 메이게 하는 노래다. 아마 노래의 시대적 배경이 광주 민주화 항쟁이고, 노래를 만든 목적이 두 열사의 영혼결혼식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리라. 설령 그 배경과 사연을 알지 못하더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부르는 이로 하여금 강제로 그 정서에 이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다음은 위키백과에 소개되어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설명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임을 爲한 行進曲)은 대한민국의 민중가요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 희생된 윤상원과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 작곡되었다. 가사의 원작자는 백기완, 작곡자는 김종률이다. 처음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표준어 규정에 따라 통상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부른다. (위키백과)
“임을 위한 행진곡”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은 노랫말을 쓰신 ‘백기완 선생님’일 것이다. 백기완 선생님은 타고난 선동가다. 연설을 할 때 고저와 장단, 그리고 강약 조절을 통해 대중을 들었다 놓기도 하고, 울렸다 웃기기도 한다. 89년 어느 날, 백기완 선생님이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 강연을 오신 적이 있었다. 백기완 선생님은 크게 노한 목소리고 그 당시 거의 유일한 진보 언론이었던 한겨레 신문을 강하게 비판하셨다.
얼마 전 한겨레 신문 기자한테 전화를 한 통 받았어. 요즘 시국에 대해 내 견해를 묻더라구. 내가 명색이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이야! 그런데, 일개 기자가 대통령 후보였던 나를 직접 찾아와 묻는 것도 아니고, 전화로 묻는 게 말이 되냐고! 내가 김대중이나 김영삼이라도 그렇게 했겠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1987년 백기완 선생님은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셨고, 민주진영은 백기완 선생님을 지지하는 ‘민중후보 지지론’과, 김대중을 지지하는 ‘비판적 지지론’으로 갈렸다. 비록 김대중과 김영삼의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중간에 사퇴를 하기는 했지만 어엿한 대통령 후보였던 것이다. 백기완 선생님의 분기탱천한 모습에 대학생들도 하나, 둘 아무리 한겨레 신문이지만 쫌 심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기 시작할 즈음, 백기완 선생님은 나즈막히 자조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전화라도 걸어주는 건 한겨레밖에 없어...
순간 대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은 한겨레 신문도 맛이 가 주변에 구독을 끊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겨레 신문은 1988년,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국민주를 모금을 통해 민족 정통지를 표방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을 때였다.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는 프랑스혁명 시기인 1792년 8월 10일 파리에서 일어난 튈트리 궁전 습격 당시 파리에 입성했던 마르세유 의용군이 부른 노래이다. 가사가 매우 호전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절대 왕정에 반대하는 민중의 의지가 가사에 담겨 있다. 무려 7절까지 있다.
1절
일어나라, 조국의 자녀들아,
영광의 날이 왔노라!
우리에 맞서 저 폭군의
피 묻은 깃발이 올랐도다.
들리는가, 저 들판에서
고함치는 흉폭한 적들의 소리가?
그들이 턱밑까지 다가오고 있다,
그대들의 처자식의 목을 베러!
2절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이 노예들의 무리는,
이 배신자들은, 음모를 꾸미는 왕들은?
누구에게 씌우려는 것인가, 이 추잡한 쇠사슬은,
오랫동안 준비된 이 족쇄들은?
프랑스인들이여, 우리를 향한 것이라, 아, 분노로다.
이 얼마나 우리를 격노케 하는가!
저들이 꾀하길, 감히 우리들을
예전과 같은 노예로 되돌리려 하는구나!
3절
무어라! 외국의 개떼들이
우리의 고향에서 법을 만들겠다고!
무어라! 돈에 눈먼 저 용병 놈들이
우리 용사들을 쓰러뜨린다고!
오 신이시여! 사슬에 묶인 손으로,
우리가 멍에를 쓰고 고개를 조아리게 된다니!
저 천박한 독재자들이
우리 운명의 고삐를 쥐게 된다니!
4절 ~ 7절 생략
후렴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대오를 갖추라,
전진, 전진!
저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from 위키백과)
광주 민주화 항쟁 기념식뿐만 아니라 소위 민중의례 때 불려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도 프랑스처럼 민중에 의한 혁명정부를 수립했다면 친일파 논란이 있는 ‘안익태’가 작곡한 현재의 “애국가”을 대체하지 않았을까?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의 관점에 따라 재해석될 뿐이다. 즉,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일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에는 그 당시 민중들의 정서가 녹아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 우리는 그 과거의 기억을 현실로 소환한다. 하지만, 그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 가사를 어떻게 해석할까?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예전에는 우월한 개인에게 기꺼이 앞서 나갈 권한을 부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일반화된 것이 제도적으로는 '계급사회'이고 문화적으로는 '가부장제'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농경을 인류 최대의 사기극으로 표현하며, 생산관계가 수렵과 채집에서 농경으로 바뀐 후 인류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극심한 기아와 영양실조에 시달렸다고 밝힌 바 있다. 농경 사회에서 생산성을 확대하기 위해선 보다 경험이 많고 우월한 사람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어렵게 수확한 생산물을 다른 부족의 약탈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남성들의 전투력이 절실했을 것이다. 수렵과 채집이 생산관계였던 시대에는 먹을 것을 찾아 주기적으로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동에 걸림돌이 되는 어른과 아이는 생존에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유목민족이었던 유대인들이 종교적으로 성관계를 강력하게 통제했던 이유 중 하나는 임산부와 갓난아이가 이동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먹을 것을 경작하며 안정적인 정착생활을 하게 된 인류는 자연스럽게 개체수가 증가했기 때문에 다산이 필요했던 모계사회에서 노동력과 전투력을 더 필요로 했던 가부장제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록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여자 아이가 태어나는 것보다 생산력에 보다 도움이 되는 노동력과, 생산물을 지킬 수 있는 전투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남자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현재 인류에게는 대략 19만 년 동안 유지해 왔던 수렵과 채집 시대의 유전자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남자가 상대적으로 공간 인지력이 뛰어난 이유는 수렵을 위해 멀리 사냥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고, 여자가 주변을 잘 살피는 이유는 채집을 하며 포식자들로부터 아이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가장 익숙한 유전자는 어쩌면 농경의 유전자일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해방된 이후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들은 그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상 속에서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다. 따지고 보면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그들의 행동은 사피엔스가 가졌던 유전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일찍이 난 사피엔스와는 다른 생태계 속에서 태어나 존재하는 그들을 새로운 인류, ‘포스트모더니쿠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지금은 앞서서 나가는 자를 굳이 따라가야 할 필요가 없는 시대이다. 앞서서 갈 사람은 가고, 그 자리에 있고 싶은 사람은 그냥 머물러 있어도 생존에 별다른 위협을 받지 않는다. 오리려 눈치 없이 앞서 나가는 소수가 가만히 있는 다수와의 간극을 확대시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세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다면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을까?
앞서서 나가라, 나는 머무를테니
열심히 살아도, 미래는 불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