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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ul 07. 2020

황혼(Twilight)에 대한 오해와 추억

소위 핑거스타일 기타를 마음에 품은 자 치고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필자의 경험을 빌자면 이 곡은 기타를 치지 못하는 사람도 간혹 아는 경우가 있더군요.


많은 사람이 ‘황혼(Twilight)’을 핑거스타일 입문곡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논란도 있습니다. 혹자는 입문곡이라고 주장하고, 또 혹자는 입문 방해용 음모일 뿐이라고 일축하기도 합니다. 마치 로망스 같은 곡이랄까? 계륵이죠.


가끔 직장에서 기타를 연주할 때가 있습니다. 뭔가 뽐내고 싶어서 어려운 곡을 연주하고 있을 땐 눈길도 안 주던 직원들이 로망스를 치면 달려와 한 마디씩 합니다.


와~ 기타 정말 잘 치시네요~
언제부터 치셨어요?
ㅠㅠ


로망스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로망스를 들으며 기타 입문을 꿈꾸죠. 그 이유는 아마도 로망스 도입부 몇 마디를 1번 줄만 잡고 연주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연주하는 모습을 처음 본 사람들은,

어? 저 정도면 나도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제대로 연주하려면 로망스보다 어려운 곡이 또 없습니다. 모두 다 아는 곡이라 실수를 하면 아무리 초보자도 눈치를 챌 수 있고, 또 단조에서 장조로 변주가 되면 운지도 꽤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전 주변에서 로망스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황혼도 그렇습니다. 안 치자니 뭔가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를 건너뛴 거 같아 찝찝하고, 치자니 이 곡을 쳐서 얻는 이득(?)이 별로 없습니다. 소위 기타 좀 치는 사람들이 정모나 번개를 할라치면 모두 각자의 필살기 하나쯤은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 곡은 필살기가 되지 못합니다. 왜? 개나 소나 다 치니까... 오죽하면 낙원상가 금지곡이겠습니까! 낙원 상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하루에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 곡을 듣는다고 합니다. 기타를 사기 위해, 또는 시연을 하기 위해 매장에 들르는 손님 대부분이 이 곡을 연주하기 때문이죠.


필자는 언젠가부터 영화, “품행제로”에 나오는 유승범처럼 몰래 황혼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입문곡이라는 말을 듣고 시작을 했는데 이게 참 만만하지가 않았습니다. 처음 4마디 연주에 익숙해지는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린 거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그 입문곡을 완성(사실은 겨우 암보에 성공한 정도?)합니다. 자신의 핑거스타일 입문을 주변에 막 자랑하고 싶어 집니다. 그런데 기타를 못 치는 사람들과는 그 피나는 과정을 공유할 수 없습니다. 대중들은 연주의 결과가 중요하지 그 과정의 고통 따윈 관심사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통기타 카페의 정모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다리던 정모... 그런데 큰일이 났습니다. 자신이 칠 순 순서가 되기도 전에 누군가 황혼을 연주합니다. 그것도 고수가 손 풀기 용으로 가볍게, 그리고 쿠울하게... 그 모습을 보며 짜증이 밀려옵니다.


아니, 저 인간은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수천 갠데 하필 황혼을 연주하고 ㅈㄹ이야~


정작 팔자의 순서가 되면 팔살기로 준비한 황혼을 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고 먼저 황혼을 치겠다고 나대기엔 모여 있는 고수들의 눈초리가 부담스럽습니다. 딴 곳을 보고 있다가도 실수를 하면 매의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 것만 같습니다. 할 수 없이 어느 방송에 나와 유명곡의 intro만 연주한 신동엽 신세가 됩니다. ㅠㅠ


전 황혼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기타에서 황혼은 공부로 치면 석사학위를 따는 것이라고... 고등학생의 대학 입학률이 70%에 육박하고 있는 요즘, 학사는 그냥 취업을 하기 위한 발판이라면 석사는 본격적으로 연구자의 길을 가려는 사람이 밟는 코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사가 되고 나면 해당 분야의 연구자가 될 수 있죠.


그래서 ‘코파러 오시오(Kotaro Oshio)’의 황혼은 본격적으로 핑거스타일 연주를 하고자 하는 기타리스트라면 꼭 한 번 도전을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뭐 황혼을 안 친다고 핑거스타일 기타를 못 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현재 필자는 황혼을 대충 암보하는 정도이지 아직 제대로 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 대중 앞에서 황혼을 안 틀리고 연주할 수 있다면 스스로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고 자부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황혼은 마치 로망스처럼 제대로 연주하기 쉽지 않은 곡입니다.


얼마전 허리 통증을 입원한 필자는 엎어진 김에 쉬어 가랬다고, 다 까먹은 황혼을 연습하며 겨우 다시 기억해 내는 수준까지는 끌어 올렸습니다. 대충 들어 보셔도 연주가 얼마나 어설픈지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틈 날 때 마다 조금씩 연습해 카메라 앞에서도, 그리고 대중 잎에서도 안 틀리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하기 위해 연습해야겠습니다.

변원 입원 후 퇴원하는 날 연주한 황혼
야마하 12현 기타로 연주한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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