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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un 11. 2020

‘소피 마르소’ 신드롬과 "Reality"

아이돌 마케팅의 시작

난 '아이돌(idol)'이라는 단어를 1981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처음 접했다. 영어 단어이긴 한데 묘하게 한글스러웠다. 아이돌을 "아이들"로 잘못 읽으면 뭔가 청소년하고 관계되어 있는 단어라는 뉘앙스가 풍기고, '아이'와 '돌(doll)'의 합성어로 착각하면 아이들의 인형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암튼 다음 한국어 사전에서는 "아이돌"이라는 단어를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젊은 연예인"이라고 풀어놓았다.

1980년대 당시 중학교 남학생들의 아이돌은 "라붐"의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와 "파라다이스"의 '피비 케이츠(Phoebe Cates)'가 양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피 마르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청순한 매력으로, '피비 케이츠'는 동양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더불어 과감한 노출로 묻 남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나? 난 매일 '소피 마르소'파와 혈투를 벌였던 '피비 케이츠'파였다.

'소피 마르소'와 '피비 케이츠'... 당신은 양파? 대파? 쪽파?

그때는 관심도 없었지만, 당시 여학생들은 '박혜성파와 '김승진'파로 나뉘어 싸웠다는 사실을 훗날, '유승범'과 TTL소녀로 유명했던 '임은경', 그리고 '공효진'이 출연했던 영화, "품행제로"를 통해 알게 되었다.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 '박혜성'은 "경아", '김승진'은 "스잔"이라는 유사한 노래를 발표하며 피 터지는 아이돌 대결을 펼쳤는데, 가수나 노래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러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 돈을 챙기려는 자본(주의)이 문제지... 지금은 SM, JYP, YG 등 이루 셀 수도 없는 연예 기획사들이 아이돌을 마치 상품처럼 찍어 내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아이돌 마케팅이 과연 자본의 먹이가 될 수 있을지 살짝살짝 간을 보던 시기였던 것 같다.


다시 글의 제목에 썼던 "Reality"로 돌아오자. 2016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딸이 학원에서 베이스를 배웠는데, 그 학원에서는 아이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매년 정기 공연을 했다. 문제는 정기 공연의 포스터가 매우 구렸다는 것... 공연 포스터를 본 나는 딸에게 아빠가 공연 포스터를 만들어 줄 테니 공연 오프닝으로 세월 달라고 구걸했다. 결정권은 학원이 아니라 딸에게 있었으므로... 다음은 내가 만든 포스터다.

딸이 참여했던 밴드의 이름은 "수상한 밴드"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의 구걸이 받아들여져 오프닝 공연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공연 날이 다가왔다. 무슨 노래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광고를 통해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나와 같은 세대의 부모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영화 "라붐"의 주제곡, "Reality"를 골랐다. 중간에 가사도 까먹고,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가장 폭발적인 관객의 호응을 얻어 낸 공연이었다. 마치 조용필이 "비련"을 부를 때, '기도하는~'으로 시작하는 첫 소절 뒤에 팬들의 괴성이 없으면 허전하듯이, 나도 이 공연 이후부터 "Reality"를 부를 때 첫 소절, "Met you by surprise~"를 부르고 난 후 관중들의 환호가 없으면 뭔가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ㅠㅠ 


다음은 공연이 끝난 후 아이들의 엄마들로부터 여심을 저격했다는 평을 들은 "Reality" 공연 영상이다. 앵콜곡으로 부른 '송시현'의 "꿈결 같은 세상"은 덤이다.

"Reality" + "꿈결 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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