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ack2analo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백수 채희태 Jul 28. 2020

추억의 "로보트태권V" 시리즈

대단한 유튜브... 그렇게 찾아도 없던 로보트태권V 2탄, “우주작전”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한때 태권V 매니아 사이에서 1억을 줘도 볼 수 없다는 썰이 돌았던 시리즈다. 물론 난 대략 10년 전에 어렵게 구해서 봤다. 기념으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태권V 시리즈를 공유한다.


❏ 로보트태권V 1탄 (1976년)

로보트태권V는 얼마 전까지도 마징가Z 표절 논란에 시달렸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모든 메카닉 애니메이션은 철인28호의 표절이라고 봐야 한다. 김청기 감독은 로보트태권V의 머리 디자인은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또한 주인공의 태권도 능력에 따라 로보트가 동작하는 것은 마징가Z의 조종 방법을 뛰어넘는 것이다.


사실 김청기 감독이 로보트태권V 기획안을 들고 투자자들을 찾아다닐 때 대놓고 마징가Z와 비슷하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기억하는 로보트태권V의 초기 컨셉 디자인은 그레이트 마징가와 99% 유사했다. 로보트태권V를 론칭하기 전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에 부록으로 실렸던 로보트태권V 브로마이드를 대학생 때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군대 갔다 오면서 유실되었다. 만약 타임머신이 만들어진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언제 어떻게 유실되었는지를 밝혀 다시 찾는 것이다.

"로보트태권V" 초기 컨셉 디자인, 심지어 제목이 마징거태권이다. (출처 : 나무위키)

태권V 1탄과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지금과 달리 멀티플렉스 극장이 아니라 극장이 1류, 2류, 3류, 그리고 동시상영관으로 나뉘어 있었을 때, 로보트태권V는 처음 세종문화회관 별관과 어린이대공원 무지개 극장, 두 곳에서 개봉했다(대한극장이라는 제보가 들어와서 정정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껌값이지만, 나와 형제들은 당시 부모님한테 로보트태권V를 개봉관에서 보여달라고 조를 엄두 자체를 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1류 극장에서 뽕을 뽑은 로보트태권V는 2류 극장인 미아리 대지극장에서 상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 집은 미아리 근처에 있는 길음동이었다. 나와 형제들은 용기를 내 로보트태권V를 보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다. 우리 부모님이 한 번에 승낙하셨을 리가 없다. 몇 번을 조르고 졸라 겨우 로보트태권V를 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 큰형, 5학년인 작은형, 그리고 2학년인 내 손을 잡고 대지극장 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어머니는 큰형에게 약간의 용돈과 영화가 끝나면 동생들을 잘 챙겨서 데리고 오라는 당부를 하시고 집으로 가셨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 극장에 들어갔다 나오면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오른쪽이 왼쪽 같고, 왼쪽이 오른쪽 같고... 극장을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육교를 건너는데, 큰형은 육교를 건너 왼쪽 계단으로, 작은형은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작은형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큰형이 나를 불렀다. 작은형은 어렸을 때부터 약간 엉뚱한 경향이 있어서 난 작은형이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가 다시 되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큰형을 따라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고 한참이 지나도 작은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이 발칵 뒤집혔다. 작은형은 밤 늦게 집에 돌아왔다. 늦은 이유를 물으니 수유리까지 걸어 갔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집은 반대 방향이라며 버스를 타고 가라고 버스비를 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얘기 다 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거 같아 여기서 줄인다.


로보트태권V 1탄 유튜브 링크 클릭


"로보트태권V 1탄" 포스터

❏ 로보트태권V 2탄 "우주작전" (1976년)

필자가 로보트태권V 2탄을 다시 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매리와 깡통로보트의 캐릭터 송이 나오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이 태권V 1탄에도 이미 매리의 테마와 깡통로보트의 테마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청기 감독은 로보트태권V를 제작할 때 캐릭터 별 테마 음악을 만들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로보트태권V 2탄에는 그 테마에 가사를 입혀 매리와 깡통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중 매리의 노래는 인간이 되고 싶은 매리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볼 때 등장하는 뮤지컬 요소를 로보트태권V에서도 볼 수 있다. 1탄에서는 훈이와 매리가 무지개를 타고 날아다니며 춤추는 장면이 나오고, 2탄에는 드디어 매리와 깡통로보트의 캐릭터 송이 나온다.

매리의 노래
깡통로보트의 노래


태권V 1탄이 흥행에 성공하자 김청기 감독은 바로 2탄 제작에 돌입한다. 1탄이 1976년에 개봉을 하고, 그해 겨울 2탄 우주작전이 개봉되었는데, 제작 기간이 짧은 탓인지 1탄에 나왔던 장면이 맥락 없이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태권V 시리즈 중 2탄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한다.


태권V 2탄, "우주작전"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는데, 하나만 소개를 하자면... 2013년 당시 은평구청 정책보좌관으로 있을 때 성북구청에서 강의 요청이 왔는데, 강의 시간이 무려 3시간이었다. 지금은 3시간도 짧을 정도로 too much talker가 되었지만, 그 당시엔 처음 하는 강의라 3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막막했다. 준비한 PT는 거의 끝나가는데 시간은 겨우 1시간 반이 지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갖고 다시 강의를 이어갔다. 마침 강의 내용 중 학습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필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로보트태권V와 연결해 나머지 시간을 채웠다. 주요 내용은 태권V 2탄 "우주작전"을 구하게 된 스토리였다. 강의가 끝나고 개인적으로 질문을 하고 싶은 몇 분들이 줄을 섰다. 앞에 분이 질문으로 시간을 잡아먹자 뒤에서 기다리시던 한 분이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메모 한 장을 남기고 급하게 자리를 뜨셨다. 개인 질문에 대한 답을 모두 마친 후 그 메모지를 찾아 읽어보고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저희 남편한테 태권V 2탄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도 꼭 보고 싶다고 하는데 동영상 파일을 얻을 수 없을까요?


한때 1억이 있어도 볼 수 없다던 태권V 2탄 "우주작전"을 이제 유튜브에서 감상해 보시라!


로보트태권V 2탄 "우주작전" 유튜브 링크 클릭


로보트태권V 2탄, "우주작전" 포스터


❏ 로보트태권V 3탄 "수중특공대" (1977년)

로보트태권V 3탄 수중특공대 부터는 살짝 힘이 빠진다. 결정적으로 훈이의 파트너인 영희와 2탄 마지막에 인간이 된 매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노만박사의 딸 '유리'와 해저 왕국의 공주인 인어, '릴리아'가 등장한다. 완성도를 위해 많은 제작비를 투자했지만, 전작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했다. 나는 영희와 매리를 출연시키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중특공대"는 로보트태권V의 정통 시리즈 중 마지막이다. 그 이후의 태권V 정통 시리즈는 모두 쓰레기다. 김청기 감독은 로보트태권V를 독창적으로 만들어 놓고,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변신로봇이나 건담 등을 본격적으로 표절하면서 스스로 몰락을 자초한다. 이는 로보트태권V 1탄처럼 투자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아쉬운 지점이다.


로보트태권V 3 "수중특공대" 유튜브 링크 클릭


로보트태권V 3탄, "수중특공대" 포스터

❏ 황금날개 123 (1978년)

김청기 감독은 로보트태권V 3탄 "수중특공대"의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새로운 시리즈를 들고 나온다. "황금날개 123"의 캐릭터 디자인은 독창적이지만 그 모티브는 "인조인간 캐산"과 "바벨 2세"의 짬뽕이었다. "황금날개 123"의 2호 청동거인의 초기 컨셉 디자인은 마징가Z를 잇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게타로보G"를 카피했다. 스토리는 태권V 2탄 "우주작전"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스케일이 매우 흥미로웠다.


왼쪽이 게타로보G, 오른쪽이 황금날개 123의 초기 론칭 포스터


"황금날개 123" 유튜브 링크 클릭


"황금날개 123"의 진짜 포스터

❏ 로보트태권V와 황금날개의 대결 (1978년)

지금이야 "어벤저스"처럼 여러 스토리의 주인공이 한 작품에 출연하는 소위 '슈퍼 스트링'이 인기지만, 두 영웅이 하나의 작품에 등장하는 로보트태권V와 황금날개의 대결은 당시 초딩들한테는 파격적인 스토리였다. 로보트태권V와 황금날개가 싸운다고? 왜 싸우지? 도대체 어떤 스토리일까? 하지만 "로보트태권V와 황금날개의 대결"은 대놓고 일본의 "바벨 2세"를 카피한 졸작이었다.


로보트태권V와 황금날개의 대결 유튜브 링크 클릭


"로보트태권V와 황금날개의 대결" 포스터

❏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 (1979년)

우주전함 거북선은 김청기 감독의 작품이 아니다. 우주전함 거북선이 주인공이고 로보트태권V가 까메오로 출연한다. 그래서 그런지 훈이나 영희 모습도 낯설게 그려졌다. 우주전함 거북선의 초기 인트로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지구의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주 저편에 있는 탈레스 별에서 대기오염 제거장치를 가져와야 하는데, 탈레스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튼튼한 우주전함이 필요하고, 그 우주전함을 만들기 위해 태권V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태권V의 해체에 반대하는 훈과 영희는 군인에게 쫓겨난다. 이런 ㅂㅇㅁㅇ...


훈이 : 안돼요!
윤박사 : 아니, 웬일이냐, 너희들...
영희 : 아빠, 로보트태권V는 정의를 위해서 싸웠어요.
훈이 : 태권V를 해체하시면 안 됩니다.
윤박사 : 너희들의 아픈 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태권V다 더 강력하고 성능 좋은 우주전함이 필요하다. 슬픈 일이지만 태권V를 분해하여 우주전함의 부속으로 사용하는 수밖에 없어요.
훈이 : 박사님...
영희 : 아빠 제발...
윤박사 : 최대령, 훈과 영희를 데리고 나가시오!
결국 훈과 영희는 울며 최대령에게 끌려 나간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우주전함 거북선이 외계 악당들에게 공격을 당해 위기에 빠지자 거북선에서 해체된 줄 알았던 태권V 조각들이 하나씩 튀어나와 조립이 된다. 그리고... 태권V의 주제가가 흘러나온다.


달려라 달려 로보뜨야, 날아라 날아 태권V~


그때의 감동은 나이가 들어서도 잊혀지질 않는다. 거의 식스 센스끕 반전이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스뽀라는 게 없었지만, 만약 그걸 스뽀하는 친구가 있었다면 아마 대한민국 1호 왕따가 되었을 것이다.


태권V가 원형을 유지한 채 등장하는 시리즈는 우주전함 거북선이 마지막이다. 그 이후의 태권V 시리즈는 김청기 감독이 일본의 변신로봇이나 건담을 따라 하면서 몰락을 자초한다. 태권V는 우주전함 거북선을 만들기 위해 해체된 것이 아니라, 김청기 감독이 어설프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따라 하면서 스스로 해체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그 이후에 나온 태권V 시리즈는 나에게 모두 쓰레기다.


날아라 주전함 거북선 유튜브 링크 클릭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 포스터 (1979년)


그렇게...

나의 초딩시절을 설레게 했던 대한민국 메커닉 애니메이션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막대 커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