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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Aug 01. 2020

마을공동체의 분화

정치권이든, 행정가든 소위 우리나라의 네임드 중 최초로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제기한 사람은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아니, 마을공동체를 주창하던 많은 사람들 중, 박원순 씨가 서울시장이 되면서 네임드가 된 것일 수도 있고, 재야에서 조용히 시민운동을 해 오던 박시장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똥물을 뒤집어쓸 각오를 하고 정치권에 뛰어들어 네임드가 된 것일 수도 있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박시장이 마을공동체를 앞세워 천하를 도모하려는 웅대한 뜻을 품은 유비라면, 박시장으로 인해 물을 만난 시민사회는 모두 관우고, 장비고, 조자룡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은 빠른 경제 성장 속에서 유례없는 속도로 마을공동체가 파괴되어 온 나라이고, 그 나라에서 채 시민이 되지 못한 국민들은 공동체가 주는 구질구질함보다 분리와 소비가 주는 안락함과 달콤함에 빠져 인간이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 또한 빠르게 망각해 왔다.
아무튼 박시장으로 인해 간디가 무려 1세기 전에 부르짖었던 마을공동체 바람이 뒤늦게 대한민국에서도 불기 시작했다. 그만큼 마을과 공동체라는 것이 인간사회에서 기본적인 가치이기 때문이거나,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절박했기 때문이거나...


문제는 역시 대한민국 답게 마을공동체가 반공동체적인 전문성으로 평화롭게 찢어발겨지고 있다는 것? 그것도 밥그릇이라고... 쫌 멕힌다 싶으니 이른바 마을공동체를 둘러싼 진영의 분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이 충만한 자의 눈에 얼마나 같잖아 보일지를 생각하면 쪽팔림에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애초부터 마을공동체가 빅텐트가 아닌 플랫폼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 텐트 사이를 떠돌던 돼지들이 플랫폼을 그냥 그런 텐트로 보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로 완장을 찬 또라이들이 마을공동체라는 큼지막한 텐트를 쳐 놓고 그 입구에서 성골과 진골을 가려 왔는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유사 브랜드의 마을공동체가 하나씩 생겨나고 있으니... 이른바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찢어진 텐트가 그중 하나요, 복지와 의료가 만나 영어 간판으로 내 건 “커뮤니티 케어”가 또 다른 하나다.


얼마 전 마을교육공동체 포럼에 다녀왔다. 갈 이유도 충분했지만, 동시에 가지 않을 이유도 차고 넘쳤다... 그래도 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배우가 출연했다고 미스터 션샤인 시청을 거부하는 어떤 이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몇(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을 위해 마음에 드는 걸 포기해 스스로의 편견에 갇히기 싫었던 까닭이다.


마을교육공동체 포럼은 외국어대 김용련 고수의 강의로 시작되었다. 김용련 교수의 강의는 늘 시대의 맥을 짚는다. 교수라는 대한민국에서의 지위가 그 맥의 의미를 더욱 빛나게 한다. 226개 기초 지자체 중 100여 개가 넘는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혁신교육지구"의 다음 비전은 "마을교육공동체"라는 김용련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 일찍이 나는 2017년 서울형혁신교육지구 방침 연구를 할 때 “마을교육생태계 조성을 통한 공교육 혁신”이라는 1기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비전을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공교육 혁신은 교육 전문가의 절박함일 뿐이다. 일반자치와 교육자치가 협력하는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비전에 학교의 절박함만이 담겨 있는 꼴이다. 여전히 일반자치와 마을은 교육자치와 학교의 대상일 뿐이라는 의미가 비전 안에 녹아 있다. 그래서 2기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비전은 마을공동체 복원이 목적으로, 그리고 공교육 혁신은 그 결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나온 2기 비전이 "참여와 협력으로 아동청소년이 행복한 마을공동체"이다.


중복하지 않아도 이미 마을공동체 안에는 교육이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래도 학교와 공교육을 대표하는 교육청에서는 불안했나 보다.  방침 연구 결과를 참조하여 조금 수정을 했다. "마을교육공동체"로는 부족했는지 "참여와 협력으로 아동청소년이 행복한 학교-마을교육공동체"가 공식적인 2기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비전으로 채택(?) 되었다.


난 홀수를 좋아한다. 누군가는 외롭고, 그래서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 3이라는 숫자도 좋아한다. 1은 외로움이 지나치고, 5 이상의 홀수는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짝지의 변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문제를 지적하거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할 때 난 늘 세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외로운 동시에 빈약하고, 둘은 변수의 여지가 없어 완벽해 보이나 그래서 또한 불안하다. 그래서 셋이다. 무엇이든 세 가지 이유나, 근거를 댈 수 있으면 충분해 보인다.


마을공동체이든, 마을교육공동체이든 그 의미 자체에는 동의하나 '교육'이라는 단어 하나 있고 없고가 현실에서는 매우 큰 구분이 된다. 좋은 의미가 진영이 만든 신념의 구분으로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래서 마을교육공동체를 가로막는 세 가지, 제도적, 문화적, 시대적 저항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 보겠다. 


첫 번째 제도적 저항은 일반자치와 교육자치 간의 충돌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일반자치와 교육자치가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그 제도적 구분의 결과가 매우 자의적이며 미묘하면서도 복잡하다. 마을교육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이 제도적 저항을 어떻게 돌파할지가 관건이다. 이미 교육의 전문성이 시민이 지향하는 상식의 방향과 한참 어긋나 있는 것도 문제지만, 나아가 우리 사회에선 전문성이 밥그릇의 크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단순히 제도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두 번째 문화적 저항은 성장과 선발의 충돌이다. 성장과 선발의 균형은 마치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자유와 평등의 균형만큼 어려운 과제이다. 성장이 교육의 모든 것이었던 중세 이전과 다르게 산업자본주의에서는 선발의 필요성이 교육의 성장 기능을 압도해 왔다. 교육은 중세의 계급제도를 해체하는 혁명적 도구였지만, 현재에는 역설적으로 실력의 차이에 따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억압의 망치가 되었다. 이러한 역설이 어디 교육뿐이겠는가!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근대와 탈근대가 충돌하는 시대적 저항이다. 공동체가 작동하려면 그 구성원의 쓸모를 인정해야 가능하다. 그 쓸모를 권력으로 억압해서도 안되고 신념으로 구분해서도 안된다. 마을교육공동체를 지향하는 포럼이 과연 이러한 근대성과 선을 그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이 포럼에 참석을 해야 할지 끝까지 고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 속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이 근대성(근대주의자?)을 배척하는 것이 과연 탈근대를 지향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차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선택과 집중’은 폐기된 IMF의 경제 성장 전략인 낙수효과를 대표하는 전술이다. 선택하는 순간 누군가는 배제되고, 집중하는 순간 선택과 배제 사이의 양극화가 시작된다. 신이 아닌 한낱 인간은 그 지위가 높거나 신념에 대한 확신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의 주관으로 무엇인가를 선택하면 안 된다. 선택하는 순간 더 많은 소중한 것들이 배제된다.
더더구나 부족하디 부족한 인간의 선택에 집중까지 한다면?
물론 선택과 집중이 절실하게 필요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열 마리의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못 잡으면 굶어 죽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토끼를 쫓는 대신 라면을 끓여 먹거나 햄버거를 사 먹으면 된다. 그런데 여전히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누군가는 선택과 집중을 목놓아 부르짖는다. 그 목표의 달성이 곧 인류의 멸망인지도 모르고...

이제 선택하는 대신 선택에서 배제되었던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선택한 곳에 집중되었던 자원을 배제되었던 곳에 ‘분배’하자. 그래야...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유실되거나 희생되었던 많은 가치들을 되살릴 수 있다.


마을교육공동체 포럼이... 자신이 제시한 가치와 기준의 빅텐트를 세우고 그 밑으로 모두 기어 들어오길 요구하는 포럼이 아니라, 이미 그쪽으로 걷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몸부림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걷기를 희망하다. 그 걸음의 시작이 학교든, 마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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