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백수생활 #2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지지자는 불여호지자요, 호지자는 불여낙지자니라!
논어(論語)의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며,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이 사회가 공자님 말씀과는 반대로 樂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知之者인 사회이기 때문은 아닐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지지자들은 인생을 즐길 틈이 없으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누려서는 안 되는 사치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다시 보는데 예전엔 그냥 흘려보냈던 한 장면이 내 생각을 붙잡았다. 주인공 강백호가 소속된 북산고가 지역 예선을 통과했는데, 본선 경기에 출전하려면 4과목 이상 낙제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농구선수가 농구만 잘하면 그만이지! 강백호를 비롯해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농구를 하는 지지자들이 아니다. 농구의 재미에 푸욱 빠져있는 호지지들이며, 그들은 모두 낙지자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대한민국은 엘리트의 나라다. 경제도 엘리트 자본인 대기업에 몰빵해 성장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엘리트 교육이 있었다.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체육 엘리트가 되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기획사가 작정하고 달려들어 아이돌 엘리트를 프로그래밍한다. 저변이라고 하는 토대가 부실한 엘리트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이다. 피겨 스케이팅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김연아는 대한민국이라는 피겨 제국의 나 홀로 여황이며,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영미 신드롬’을 일으키며 컬링 은메달을 딴 대한민국의 컬링 선수는 그들이 선수이자 곧 대한민국 컬링의 부실한 저변이다.
그런데 우리는 저변 없이 이루어낸 성과를 성찰하기는커녕 자랑스러운 민족성이 만들어 낸 쾌거라며 국뽕을 부추긴다. 그러면서 성공의 이면에 있는 고통과 눈물을 은폐한다. 그런 식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앞세워 불과 200년 만에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한 명의 성공한 지지자를 내세워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성공 신화에 취하게 만드는 것이다. 슈퍼맨과 배트맨에 어벤저스까지… 왜 그렇게 미국산 영웅들이 많은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유러피안 드림』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끝났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성공신화를 따라 한 “코리안 드림”은 그 화려한 이면에 짙은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으며, 미디어 자본은 오늘도 그 어두운 면을 은폐하기 위해 열일 중이다.
다른 건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희생정신 하나는 기네스감이다. 한 사람이 성공해 대한민국을 빛 낼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강요’ 당한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호지자나 낙지자가 존재할 리 없다. 역경을 딛고, 경쟁에서 승리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오직 한 명의 지지자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비치는 영광의 스포트라이트가 가지고 있는 수명은 잠시 스쳐가는 유행처럼 짧다. 영화, “라디오 스타”는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스타가 조명이 꺼진 인생의 무대 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박민수(안성기 분) : 곤아 저게 은하철도 999에서 마지막 종착역인 안드로메다야. 이쁘지?
최 곤(박중훈 분) : 어디 봐 바. 어 이쁘네.
박민수 : 근데 곤아 별은 말이야 혼자 빛나는 별은 없대. 다 빛을 받아서 빛나는 거래.
영화가 아닌 현실 속의 스타는 더 비참하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역도 스타 김병천은 2015년 춘천의 집에서 쓸쓸하게 죽어 갔다. 30세가 넘어서까지 데뷔를 못한 한 아이돌 연습생의 인터뷰는 호지자와 낙지자 없는 지지자의 허망함을 보여 준다. 그러니 백수들이여, 지지자가 아닌, 그리고 호지자를 뛰어넘는 낙지가가 되시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건 오직 백수의 특권이다. 백수는 모두가 지지자를 꿈꿀 때 사회가 보내는 비릿한 눈총을 참아가며 행복의 저변을 개척하는 낙지자다!